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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Jan 05. 2024

조급하거나 지치지말고. 그렇게 조금씩. 부엔 까미노!

<나는 왜 산티아고로 도망 갔을까> 이해솔 저

<나의 산티아고>라는 영화가 있다. 언젠가 출장 가던 비행기 안에서 어떻게 시간을 뗴울까 하다 그냥 손에 걸려서 본 영화였는데 꽤 잔상이 깊었다. 

잘나가던 코미디언인 주인공은 과로로 쓰러진 후 쉼이 필요하다는 주변의 의견에 어느 날 문득 산티아고로 떠난다. 그가 왜 그 여정에 동의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늘 셀럽으로 살아온 이가 어느 날 갑자기 순례자1이 되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는 꽤 웃겼다. '저기 사인 필요하세요?' '누구?;;'  지난 삶이 어쨌건 이제는 배낭과 지팡이를 든 하나의 순례자가 된 그는 이제 도와주는 이 하나 없는 이 여정이 꽤 만만치 않은 여행임을 알게 된다. 길에서 만난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며 그렇게 하루하루의 작은 여행이 모여 영화가 된다.

이런 대사가 있었던 것 같다. 까미노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있는데 그럼에도 누구든 길의 질문은 같다고. "나는 누구인가?" 또 "어떤 목표를 찾느냐가 우리의 목표"라던 이야기도 꽤 인상 깊었다.


여하튼 그날 이후부터 산티아고는 내 버킷리스트의 하나가 되었고 여전히 나는 산티아고를 꿈꾸며 까미노를 떠났던 이들의 일기만 주구장창 읽고 있다. 모든 걸 던져 버리고 순례의 길을 떠난 이들과 달리 나는 오늘도 지하철에 몸을 싣고 여의도를 향한다. 어쩌면 이 길도 내 작은 순례 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책은 어쩌면 회사 안에서 한 번쯤은 마주쳤을, 나와 같은 국제 NGO를 다녔던 동료의 이야기다. 어느 날 문득 공지로 뜬 인사 공고를 보고 이 분도 좋은 데로 가시는가 보구나 했는데 웬걸. 그는 까미노에 있었고 그 길을 걸으며 삶을 생각했다.


책은 그가 까미노를 떠나면서부터 마지막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기까지. 조금 더 나아가 그 이후에 그가 스페인에서 아버지의 기억을 털어내고 온전히 삶의 궤적을 되찾기까지의 이야기다. 매일의 기록인 탓에 어느 날은 밋밋하기도, 또 어떤 날은 꽤 흥미롭기도 한 여행 일지를 따르다 문득 어느 질문에 도달하게 되었다.

왜 걸을까? 오로지 걷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길에서 저자 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은 오로지 하늘과 땅, 그리고 조개껍데기로 그려진 표지판에 기대어 무엇을 찾길 바라고, 또 찾아왔을까. 


생각보다 삶에서 바꿀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을 나는 순례길에서 깨달았다. 불행을 기꺼이 마주하고 삶의 태도를 스스로 결정한다면은 내 삶은 가치 있게 빛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느낀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새벽부터 성실하게 걸으며 평범하게 무자했던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_outro 중


당장 내일 산티아고를 걷게 된다면 한 달 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쉬 이야기할 순 없지만 아마도 나 역시 비슷한 결론을 가지도 돌아왔을 것 같다. 삶에서 바꿀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고,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루하루 성실하게 나의 오늘을 살아내는 일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하루하루 쌓아간 나의 오늘이 언젠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렀을 때 지나온 오늘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조급하거나 지치지말고. 그렇게 조금씩.

그렇게 오늘도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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