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저
1. 어렸을 때는 미술관, 박물관에 가는 게 참 싫었다.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왜 이게 이렇게까지 유리칸 뒤에 갇혀있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는 작품들을 마주하며 그저 집에 가고 싶기만 했다. 하긴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낸 건 비단 나뿐은 아니었을거다.
2.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순전히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이라는 그림이었다. 대학교 때 우연히 도서관에서 찾은 그 책은 동명의 책 이름의 표지이기도 했던 것 같은데 그 그림을 책 한 권으로 온전히 풀어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림 한 장을 이렇게 많은 의도를 가지고 그릴 수 있구나, 아니 그림 한 장에 이렇게 많은 해설이 나올 수 있구나. 그때부터 렘브란트를 비롯하여 소위 주요 작가들의 그림을 꽤 관심 있게 공부했다. 알면 보인다고 네덜란드 국립 미술관에서 인터넷 창 너머로만 보던 그림들을 직접 눈으로 마주했을 때 꽤 마음이 쿵쾅거렸던 기억이 있다. 아름답다.
3.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더 멧(The MEt)'이라는 애칭으로도 유명한 이 미술관은 1870년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뉴욕에서 문을 연, 지금은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대형 미술관이다. 많은 사람들의 기증과 천조국의 엄청난 재정 지원 덕에 유럽의 박물관에 비해 역사는 짧을 지언정, 동서양을 막론한 수많은 작품들을 수집할 수 있었으며 200만 점 이상의 방대한 소장품을 보기 위해서는 족히 3일은 걸린다고 한다. 이 책은 어느 날 찾아온 형의 죽음을 계기로 이 미술관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다.
4. 삶은 누구에게나 치열하다. 굳이 자본주의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든 곳에서 경쟁해야 하며, 왜인지는 모르지만 늘 누군가와 싸워 살아남아야 한다. 이 작업은 만만찮은 일이라 우리는 날 삶이라는 전쟁터에 던져졌을 때 쉽게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잊어버린다. 함부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무심함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터 뉴욕, 거기다 가장 콧대 높은 잡지사 <뉴요커>에서 일하는 작가에게 어느 날 형의 죽음이 찾아온다. 그것도 갑자기.
운 좋게 얻은 전도유망한 직장이 있는 마천루의 사무실로는 더 이상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전자책 p.86)
저자는 그 치열한 곳으로의 회귀를 거부하고 가장 단순한 일에 스스로를 놓아두기로 결심한다. 미술관 경비원. 하루 8시간 서 있으면 되는 직업. 500명이 넘는 직원들의 유니폼 사이로 숨어버리면 그만인 직업. 그렇게 도망간 그곳에서 그는 생각지도 못한, 미술관의 작품들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작품에 얽힌 이야기, 경비원이라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동료들, 미술관을 오가는 이들을 조용히 지켜보며 그는 구원에 대해 생각한다.
5.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이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전자책 p.408)
대구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그의 사연에 마음이 시큰하기도 하고, 때로는 반복되는 일상에 덩달아 지루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가 설명하는 미술 작품이 흥미롭기도 했다. 그리고 책의 말미 삶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그의 이야기에 마음이 훅하고 올라오기도 했다. 옳다. 우리 모두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숭고하고 누군가에게는 모순 덩어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둘은 언제고 자리를 바꿔가며 우리를 위협한다. 중요한 건 어떤 자리에 있건 우리는 살아간다는 점이다. 삶은, 그 지독하게도 치열한 인생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