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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Jan 17. 2024

오직 당신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환상을 버린다면

<파견자들> 김초엽 저

김초엽의 이야기는 늘 디스토피아에서 시작한다. 전작에서 인류가 망한 지구를 뒤로하고 우주로 향했다면  <파견자들>에서는 외계의 위협을 지구로 가지고 왔다. 어느 날 외계의 물질들이 지구를 정복했고 살아남은 인류는 지하세계로 숨어들었다. 그것들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다만 '범람체'라고 부르는 이 미생물 같은 균들이 인간 속에 침투하면 그 인간의 외형을 빼앗아 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류는 이렇게 육체를 빼앗긴 이들을 '광증 발현자'라 부르며 처단했다.

그렇게 지하로 숨어든, 지구를 빼앗긴 인류는 이를 되찾기 위해 '파견자들'을 만들어 지상 세계를 염탐하기 시작한다. 그 파견자가 되기 위해 훈련 받던 태린은 어느 날 자신 안에도 그 범람체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잠깐의 두려움도 잠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린은 여전히 인간이다. 그는 가만히 자신의 안에 존재하는 범람체들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알게 된다. 자신은 광인도 아니며, 곳곳에 자신과 같이 같이 범람체를 받아들인 유기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김초엽은 SF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이야기들을 훓어보자면 그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자꾸만 우리에게 던진다. 지금 당신의 모습이 진짜 당신인가? 당신이 보고 듣고 만지고 있는 것들이 진짜 존재하는 것인가? 당신이 이제까지 알아왔던 것들이 이 세계를 구성하는 것 중 지극히 일부분이라면. 그렇게 세계는 당신의 삶보다 훨씬 크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신념체계(사회, 제도, 종교 등등)를 무너뜨려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태린은 결국 지상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범람체와 공존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터득한 이들을 목도한다.

불균형하고 불완전한 삶의 형태는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까. 태린은 경계 지역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그 답을 찾아내주기를 바랐지만, 어쩌면 아이들도 명확한 답에는 다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단지 불균형과 불완전함이 삶의 원리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럼에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것,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만이 가능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태린은 그것이 계속해서 다음 세대로 이어질 질문이라고 생각했다.(전자책 p.300)

디스토피아로 점철된 세계와 그 안에서 살아내려고 하는 이들은 자꾸만 우리 신념체계 밖에 서 있는 소수자를 떠올리게 한다. 존재함에도 다수에 의해 스스로 존재 자체를 지워야 하는 사람들, 내가 여기 있다고 그렇게 목소리를 높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그 목소리에 대꾸해 주지 않는 사람들. 

소설 속 이 유기체들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은 지상과 지하의 경계 지역으로 조금씩 나와 그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가이드를 맡은 전직 파견자 자스완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혹시 지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특별한 조건이 있느냐고.

“그야 당신이 오직 당신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환상을 버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온전히 인간의 것인가? 질문은 꽤 묵직하고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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