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짱고책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짱고아빠 Jan 14. 2024

복학생 상훈이에게 내가 받은 위로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문상훈 저

결이 비슷한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문쌤, 문상기자, 문이병, 복학생 문상훈 등 다양한 얼굴을 가진 빠더너스의 문상훈이 그랬다.(정확히는 복학생 문상훈이 조금 더 그랬다) 공부도 그닥, 생긴 것도 그닥, 운동도 그닥, 몸매도 그닥. 모든 것이 그저 그랬던 시절(아 물론 지금이라고 그닥이 아닌 건 아니다)의 찌질함을 그대로 문상훈은 표현해냈고 모니터 넘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나는 그를 보았다. 어떤 에피소드는 너무 오글거리고 나 같아서 차마 보지 못하고 꺼버린 적도 있다. 더 짠한 점은 그렇게 못나고 찌질하게 그려짐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악함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없이 착하고 순한 사람. 이렇게 사는 것이 옳다고 기준을 정해놓은 세상 앞에 자꾸 부딪히는 사람. 그래서 스스로 최선을 다해 살지만 그 삶이 자꾸 놀림감이 되는 사람. 그래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세상과 조금씩 화해하고 있고, 그 화해의 가장 거친 모습이 우리가 보는 문상훈일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학창 시절의 나를 돌아보며 그땐 그랬지 하고 웃을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 마흔의 이 모습 그대로 20대로 돌아가면 진짜 한 번 멋지게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며 아쉬워하던 그 마음으로. 나는 빠더너스를 본다. 문상훈을 본다.


왜 낮의 나와 밤의 나는 이토록 다른 사람인가 하는 고민을 오래 한 적이 있었다. 계절을 관통하는 신념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하루 동안은 생각의 선형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밤에 생각하는 낮의 내 모습은 지나치게 수단적이고, 낮에 생각하는 밤의 나는 지나치게 이상적이기만 해서 혼란스러웠다.(p.47)


오랫동안 자신을 고민한 사람은 깊을 수 밖에 없다. 문상훈 또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오랜 궁금증은 확신으로 변했다. 카메라 밖에서 자신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는 한없이 깊고 진중한 사람이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며, 그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바꾸는 사람이다.

말을 하는 직업을 가진 그이지만 그는 여전히 말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오해할까 봐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거듭한다고 말한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문득 스스로 깨닫는다. 자신의 말을 가장 오해하고 있던 사람은 다른 이도 아닌 정작 본인이었다고.


비단 이런 오해가 문상훈에게만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한 챕터, 한 문장을 마칠 때마다 말과 삶이 다른, 그렇게 자기합리화에 능해진 나를 떠올렸다. 자신만만했던 그날 오후의 나와, 그 오후가 한심스러워서 밤새 베개에 헤딩하던 그날 밤의 나.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해놓고선 그 날 밤 유튜브를 이리저리 굴리며 외로움을 느끼던 나, 좋아하던 아이와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어서 누가 들어도 거짓말인 이야기를 마구마구 지어내던 그날 밤의 나.


마흔이 넘은 이제야 바로 볼 수 있는(사실 지금도 부끄러워서 죽어버리고 싶은) 그 얼굴들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문득 문상훈에게 고마워졌다. 그가 의도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그의 글을 통해 나는 나를 뜯어보게 되었다.

까만 밤, 조용히 읽고 싶은. 재미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농도 깊은 글을 원한다면 추천.

매거진의 이전글 모두가 강남이 될 필요는 없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