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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Jan 10. 2024

모두가 강남이 될 필요는 없잖아

<구로동 헤리티지> 박진서 저

경상북도 구미. 내가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나의 고등학교 시절까지 18년을 살아온 내 고향이다. 

대구광역시. 대학에 들어와 취업과 결혼을 하고 지금도 20년째 살고 있는 내 집이다.

지금은 서울에 있는 사무실을 매주 들락거리는 처지지만, 내겐 아직도 지역에 대한 마음이 있다. 대학을 서울로 가지 않은 것도, 취업을 서울로 하지 않은 것도 이 개똥같은 철학에서부터 출발했다.(지금은 좀 후회하지만 어쨌든) 취업할 즈음 누군가 너의 비전이 뭐냐 물었을 때도 '서울의 대안이 되는 지역공동체'라 했고, 아직까지 지역 은행과 지역 백화점이 서울 자본에 편입되지 않고 살아있는 도시. '우리가 남이가'가 부정적 뉘앙스로 쓰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역으로 아직까지 우리가 남이 아닌 도시. 그 도시에서 이곳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싶은 소망이 내겐 있다.

가끔 약속이 있어 한번 가본 구디 역과 라이온즈의 원정 경기가 열릴 때마다 찾는 고척돔. 사실 내가 구로라는 지역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의 전부다. 공단, 디지털 단지, 중국인으로 통칭된다며 저자는 구로를 소개하는데 미안하지만 사실 나는 구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아마 이렇듯 구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비로소 구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구로에서 자랐고, 구로를 좋아하고 계속해서 함께 살고 싶은 이의 마음과 그가 담아둔 구로에 대한 애정에 대해 알게 되었다.

구로동 토박이인 저자는 구로의 구석구석을 소개하며 구로의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상처들, 그리고 그 역사의 순간에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함께 꺼내 놓는다. 미싱과 함께 성장한 구로공단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함께 써온 수많은 사람들, 이제는 소위 3D로 분류된 산업도시에 유입될 수 밖에 없던 외국인들. 그리고 끊이지 않는 이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의 시선에 대해 그는 이야기한다. 이는 노동자에서 외국인으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이 시선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자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차별의 시선을 덮어버리기 위해 '디지털'이라는 허울 좋은 단어로 진짜 구로를 숨기려 하기도 한다. 온갖 정치적 수사로 얼룩져 버린, 그렇게 구로가 아닌 곳에서 구로를 찾는 이들의 이야기도 그는 그 안에서 살아온 토박이의 눈으로 우리게 들려준다. '우리도 강남 못지않다' 말하는,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구로를 우리는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이제는 지역 소멸을 걱정해야 하고, 우리가 부끄러워 내 고향을 등지거나 혹은 이곳을 강남처럼 만들겠다고 소리 높이는 이들에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꽤 울림이 크다.

그렇게 모두가 강남 바라기가 되어버린, 우리를 부끄러워하며 특색을 잃어버린 건 사실 구로의 문제는 아니다. 전국의 모든 동네는 공히 똑같은 마트에서 장을 보며 똑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똑같은 스타벅스를 공유하고 있다.

* 물론 양양의 서피비치처럼 리퀴드폴리탄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들도 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구로동 구석구석을 훑으며 구로동의 과거와 지금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대구가 떠올랐다. 보수의 성지, 대프리카, 김광석 거리, 막창, 치맥의 도시 등 대구를 둘러싸고 있는 이미지는 모두 다르지만 20년을 쌓아온 나의 대구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누군가는 또 자신의 동네를 떠올릴 것이다. 구로동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그렇게 조금씩 확장되다 보면 우리는 어느 교차로에서 만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짜 지역이 나아갈 방향,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이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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