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 이다혜 / 이주현 저
최근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도 대통령은 "강한 군대만이 진정한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 총 대신 꽃을》에 실린 임재성 변호사의 말처럼 "모든 전쟁의 순간마다 전쟁을 거부했던 이들이 있었고 더 많아져야 하는 것은 전쟁 이 아니라 그 전쟁을 거부했던 실천"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전쟁을 거부하는 목소리와 실천이 필요한 때다.(p.177)
진보와 보수를 보는 시각은 비단 정치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투자를 할 때도, 친구를 사귈 때도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이가 있는 반면, 모든 것에 전향적인 자세로 타인을 대하는 이도 있다. 사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이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도 나는 이제 그저 이렇게 접근하려 한다. 후보 시절에도 아마 그는 강한 군대의 필요성을 역설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많은 국민들이 그를 선택했다. 그의 말마따나 강한 총과 칼이 평화를 지켜줄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환경은 그때그때 다르고 사회에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전히 찜찜함은 남는다.
역사에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강함이 짓눌러 지켜지는 것 같아 보이는 평화는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은 (그들의 말이 의하면) 평화로웠고, 엄석대가 통치하는 5학년 2반은 겉으로 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는 반이었다. 하지만 무력에 짓눌릴 대로 눌려버린 이들이 하나둘 일어서기 시작하자 허울뿐인 평화는 금세 소용돌이가 되었다. 이는 419 혁명이라든지 민주화 항쟁에도 그랬다. 총이 꽃을 부를 수 있는가? 글쎄다.
잿빛 책을 펼쳐들면 이 외에도 데이트 폭력, 청년실업, 청소년 인권, 노인과 아동 차별, 존엄사, 무연고 고독사, 양심적 병역거부, 가난과 장애(장애인 흉내를 내는 것), 감시사회 등 우리 사회의 감춰진 부분들을 영화의 입을 빌려 들춰낸다. 경제가 좀 나아졌다고 우리는 예전보다 살기 좋은 세상이라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는 소수자의 자리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다수는 눈에 거슬리는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예전과 다름없이 지우고 잘라내려 한다.
하지만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지우려는 자들에게 자신을 내어 주어서는 안된다. 맞서야 하고 싸워야 한다. 연대해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 책은 그렇게 온몸으로 존재하려는 자들의 기록이다. ‘별나게 살지 말라고’, ‘대충 좀 맞춰 살라고’ 말하는 세간의 이야기에 맞서 나와 우리를 지켜내려는 이들의 울부짖음이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사람으로 사실 이런 이들을 꽤 많이 만난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보다, 책에서 희망하는 것보다 훨씬 무겁고 막막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잿빛 표지 위 꽃으로 쓰인 글씨를 본다. 언제쯤 우리는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낼 수 있을까? 꽃을 꽃이라 말하고 총을 총이라 말하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리고 우리는 그만큼 더 손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