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티, X세대가 돌아온다> 이선미 저
신 인류의 사랑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다섯 주인공은 모두 99학번이다. 통칭 99즈로 불리는 이들의 또 다른 이름은 X세대다. 아저씨의 줄임말로 통칭하는 X세대지만 그들은 또 그들 나름의 낭만이 있었다.
민주화를 가져온 386 이후에 일어난 신세대. <신인류의 사랑>이라는 노래 제목 처럼 신인류로 치부되었고, 배꼽티 좀 입었다고 9시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민주화 세대와 촛불 세대 사이가 공동체와 연대를 시대정신으로 가졌다면, DJ와 노무현 정부를 살아내며 공동체가 아니라 `내`가 브랜드이자 시대 정신이었던 유일한 세대.
(이 당시 이동통신 이름은 `나`였다)
PC통신과 삐삐, PCS와 스마트폰을 모두 경험한 유일한 세대.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며 세계를 누빈 대한민국 첫 세대이자 <에반게리온>을 필두로 한 덕후문화 1세대.
이 자유분방함으로 미혼을 문제행동이 아닌 사회현상으로 가져왔고, 나아가 딩크족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세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세대는 한 번도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되었던 적이 없다. 이들의 20대는 IMF에 치여 이태백 같은 신조어를 쏟아내는 철없는 아이 세대로 치부되었고, 30대에 세상에 자리 잡고 나서는 밀레니얼이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MZ세대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99즈는 지나간 노래와 착함으로 대표되는 <응답하라>시리즈의 주인공이 되었다.
어린 개저씨
이 와중에 X세대는 영포티로 불리기 시작했다. 어린 개저씨. 미혼 40대 남성은 20대 여성들과 말 섞는 것만으로도 자칫 혐오의 대상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보통 결혼 이후 아이 한둘 낳을 정도의 나이지만 이 삶을 선택한 이들도 쉽지는 않다. 가족의 필요를 위해 나의 경제력을 내어줘야 했고, 영어나 PT로 실력이 매겨져 조직에서는 쓸모없는 과차장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선배들에게는 줏대 없고 리더십 없다 구박받기 일쑤고, 후배들에게 쉬 농담조차 던지기 힘들어진 공간에 X세대가 있었다.
"문제는 X세대가 후배들을 이끌고 성과를 내야 하는 당사자라는 점이다. X세대가 선배에게 배운 리더십은 이제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다(p.115)."
책의 많은 부분이 공감되었지만, 특히 저 문장이 제일 날아와 꽂혔다. 지금 대한민국의 어느 조직이고 X세대는 조직의 핵심 그룹으로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X세대는 단 한 번도 그 역할을 감당해 본 적이 없다. IMF와 함께 각자도생을 시대정신으로 알고 평생을 살아온 우리에게 세상은 이제 후배들을 이끌고 성과를 내라고 말한다. 최근 리더십의 유형이 다양하다 못해 n개로 분화되는 이유도 아마 이러한 각자도생의 정신과도 연결될 것이다.(그러고 보니 몇 년 전 리더십 어쩌고가 그렇게 유행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진짜 불쌍한 세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X세대를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
책은 이 모든 수식어를 관통하는 X세대에 대한 보고서다. 한국경제의 중심에 있으나 소비의 주도권을 밀레니얼들에게 내어주고 하는 거라곤 주식이나 코인에 몰빵하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또 한편으로 BTS를 만들고 무한도전을 만들고 출연하는 시대를 움직이는 문화제작자, 인플루언서, 경영자들의 이야기다.
모두가 주된 소비 대상인 MZ세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책은 마케팅을 소비하는 대상 이전에 그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이른바 대한민국의 중심에 선 X세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자고 권한다. 처음으로 후배들을 이해하는 세대이자 정치적으로 진보를 메인 가치로 받아들인 첫 세대. 이 새로운 세대가 비로소 헤게모니를 쥐고, 양극화를 이야기하고 해결을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세상은 진짜로 바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지나간 시대의 막차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첫차로의 역할을 오늘 감당할 수만 있다면 몰락해버린 어느 세대를 좇지 않고 이전에 없던 시대를 열어젖힐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가슴이 뛰었다.
나조차 몰랐던 그 가능성을 X세대의 일원으로 X세대에 관심을 가져주고 일깨워 준 저자에게 감사를 표한다.
영포티 X세대가 돌아온다 / 이선미 저 / 앤의서재 출판 /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