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 신소영 저
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
제목만으로도 마음이 가라앉는다. 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 나는 그저 우린 친한 사이인 줄 알았는데 사실 너는 내가 힘들었다니.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 아니 우리는 원래 이런 사이였는데 왜 난 늘 착각 속에 살고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했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던 적이 많지 않았다. 잘하는 사람과 좋은 사람 중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잘하는 걸 골라왔고,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는 감정의 낭비 따윈 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 나를 필요한 이로 기억하는 이들보다 가끔이지만 나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주는 이들만이 곁에 남았다.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나 당신 때문에 힘들었다고.
무엇이 옳은 것인가?
그 이후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내 기준이 지극히 상식적이라는 확신 아래 그 기준에서 어긋나면 무조건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곤 했는데, 그게 얼마나 오만이었는지 깨달은 것이다. 그 이후로 변한 게 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손가락질하는 그 사람이 바로 내가 될 수도 있고, 내가 손가락질하는 그 일을 나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는 것.(p.73)
쉽고 옳고 그름을 말하는 편이었다. 그것은 잘못된 일이고 그래서 그 일을 한 너는 나쁜 사람이야. 도덕과 윤리를 판단할 수 있다 믿었고, 인간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들이 다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그 일이 내 앞에 다가왔을 때, 의지로 해결되지 않는 어떤 것이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언제부턴가 윤리적 잣대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개인의 서사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누군가는 내게 대답을 요구하지만 글쎄 나는 앞으로 이 질문에 함부로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누구도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시기와 질투
그 질문 앞에서 난 A가 아닌 내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봐야만 했다. 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시기, 질투, 더 나아가 나는 아무리 기대하고 애를 써도 안 되는 일이 A는 뜻한 대로 쉽게 이루어진 것에 대한 박탈감. 나는 내 삶을 쥐어짜서 글을 쓰는데, 쉽게 쓴(것처럼 보이는) 글이 더 사람들에게 박수받는 것에 대한 열등감(p.79)
나는 늘 쿨한 척했다. 제법 부러워할 법한 남의 성공 앞에, 너무 닿고 싶지만 결국 내 마음이 닿지 않는 어떤 것에 늘 쉽게 돌아서는 척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고, 괜찮은 척했다. 하지만 모두가 돌아가고 홀로 남은 밤, 결국 해결되지 못한 감정은 나를 휘감아 올랐고 때론 분노로 때론 자책이나 좌절로 보내는 밤이 많아졌다. 이렇듯 해결되지 않는 감정은 결국 누군가를 해치고 말았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못한 감정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나를 해쳤다. 나도 안다. 이것이 내게 좋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되었다. 도무지 나는 이 감정을 해결할 수 없다. 나는 질투하는 인간이고 시기하는 인간이다. 받아들이니 조금은 편해졌다.
정답이 없는 삶
생각해보면, 나는 "왜?"라고 묻는 느낌이 드는 글보다 늘 모범답안 같은 글을 썼다. 내가 일해온 곳들의 분위기가 그랬다. <좋은 생각>식의 착한 답이 정해져 있는 글. 그래서 끄다 보면 결론 부분에서 항상 정답을 제시해야 할 것 같고, 자기 계발서처럼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 행복해진다는 식의 결론을 내줘야 할 것 같은 강박에 매여 있었다. 나중에는 그런 나의 글에 내가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다. (p.161)
삶에 정답이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늘 잊어버리고 한다. 성장이나 효율 같은 담론에 빠진 이들일수록 더 그런 것 같다. 결국 이렇게 이야기 하는 나도 너에게 정답을 요구하고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할지언정 그것은 나의 입장이고 결국 너는 나와 같지 않다는 걸 나는 늘 망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 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 마음 깊이 사과한다. 그리고 쉽지는 않겠지만 누군가를 질식시키지는 않을 거라 괜히 한 번 더 되뇌어 본다.
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 / 신소영 저 / 웅진지식하우스 출판 /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