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 더글라스 애덤스 저
환경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기후 위기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 그리고 이제 진짜 우리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들이 실제로 발생할지를 두려워하는 편이다. 누군가는 호기롭게 개인이 기후 위기 행동들을 실천해 봐야 기업 하나가 다 망쳐놓는다며 그거 다 소용없는 일이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우리가 행동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진 못한다.
기후 위기 관한 책을 꽤 읽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추천 리스트가 바뀌었다. 이거다. 와 이 책 재밌다. 기후 위기를 이렇게도 풀어낸다고? 아니 이거 여행책 같은데 기후 위기가 생각 난다고? 정말 세상에는 재미있고, 잘 쓰는 사람이 많다.
이 책의 저자는 더글러스 애덤스. 우리가 쉬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제목은 익히 알고 있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저자다. 그럼 그렇지. 보통 내공의 이야기꾼이 아니고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괜히 글쟁이를 향한 심술이 치솟았다. 나는 언제쯤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책은 단전에 무게중심을 가득 담아, 진중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기후 위기가 어떻게 우리를 망하게 할 것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이 히치 하이커는(더글러스는 2001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우연한 기회에 아이아이 여우원숭이, 코모도 왕도마뱀, 실버백 마운틴 고릴라, 북부 흰코뿔소, 카카포, 양쯔강 돌고래, 로드리게스 큰 박쥐 같은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을 만나기 까지의 과정과 함께 이들이 어떤 존재들인지, 미국 사람이 아닌 로컬은 이 존재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나아가 우리네 인간들은 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그 여행을 즐겁게 따르다가도 이따금 훅 들어오는 이야기에 아프기도 하고 마음 한편이 답답해 오기도 한다. 이들 중에서는 우리의 욕심 때문에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동물들도 있다. 또 이미 우리가 보호하기에 늦어버린, 우리의 노력과 상관없이 멸종을 향한 시간을 기다리는 동물들도 있다. 물론 멸종 위기 종들 치고는 아직 꽤 많은 개체가 남아있는 것들도 있다. 나도 언젠가는 이것들을 볼 수 있을까? 사진으로 보이는 녀석들의 얼굴에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우리의 중에 대해 도무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한 전 우리가 선이라고 부르는 것과 악이라고 부르는 것을 구분하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악한 것의 이미지를 우리 밖에서,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동물들에게서 찾아내곤 역겨워하고, 그런 반면 자기 자신은 선하게 여긴다. 그 동물들이 적당히 역겹게 굴지 않으면 염소를 던져준다. 그 동물들은 염소를 원치도 않고, 그게 필요하지도 않다. 만약 그걸 원했다면 스스로 구했을 것이다. 염소에게 일어난 유일하고도 철저하게 역겨운 일은, 사실상 우리가 저지른 짓이다.
(p.97)
우리의 지성이 절대적인 기준인 양 이들의 지성을 판단하려 드는 우리의 태도가 너무나 가소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대신 녀석이 우리를 어떻게 볼지 상상해 보려 했지만, 물론 그건 거의 불가능했는데, 상상력의 빈틈을 메우는 고정관념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내 생각이고 자신이 갖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고정관념이야말로 가장 오해의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p.146)
더 좋았던 점은 멸종 위기의 동물들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지면을 채우기보다 이들을 거울 삼아 비춰지는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너무 함부로 우리가 아는 것만을 전부라 규정하고 그것들에 세상의 모든 것들을 끼워 맞춘다. 심지어 동물의 마음 또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려 하고, 나아가 선과 악으로 구분하여 그들을 판단하려 한다. 툭툭 던져지는 저자의 송곳 같은 이야기에 우리는 얼마나 편협할 수 있는지에 대해 꽤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다.
책의 제목처럼 아직 소수이지만 이 녀석들이 존재하는 오늘이 이들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가 마다가스카르나 자이르를 방문할 가능성도 희박하긴 하지만 그래도 못 보는 것과 안 보는 것의 차이는 꽤나 클 테니 가능한 이들이 오래오래 우리와 함께 지구에 머물러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내 눈으로 이들을 마주할 때 이 책이, 더글러스 애덤스가 기억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