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의 마흔수업 | 김미경 저
니가 아무리 베스트에 있어봐라 내가 읽나, 했지만 결국 읽고 말았다.
김미경이나 김창옥 같은 강사들에 대한 괜한 거부감이 있다. 물론 그들은 세상이 필요한 곳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강의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잠깐 순간의 위로가 될지는 모르나, 실제적으로 우리의 삶을 바꾸어 주지는 않을 뿐더러 오히려 현실을 내팽개치거나 눈 감아버린 채 상상 속에서 '잘 되는 나'만 찾아다니는, 그들을 매개로 자기 계발이라는 종교에 갇힌 이들을 워낙 많이 만나서 나는 괜히 그들을 멀리했다. 그 종교에 갇힌 이들에게는 제발 새벽에 미라클 찾다 업무시간에 졸지 말고 오늘 해야 할 일이나 제대로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김미경 강사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 건 그의 책 <리부트>였다. 코로나는 강사라는 직업을 가진 그에게서 정말 모든 것을 가져갔다.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강사가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는 방법을 찾아냈다. 모두가 망해 나가는 와중에서도 MKYU를 만들어냈고, 나아가 웹 3.0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대의 완전히 다른 형태의 플랫폼을 만들어 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자신의 이야기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그의 콘텐츠에 대한 의심은 현재 진행형이었는데 어쩌다 얻어걸린 휴일, 어떤 책을 읽을까 하다 결국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책의 전반부에 있던 그의 이야기.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게요. 당신은 잘못 살지 않았어요. 자신의 꿈을 좇아 성실히 잘 살아왔으니 스스로를 의심하지 마세요. 잘못된 건 딱 하나, 마흔에 모든 걸 이루고 안정을 찾아야 한다는 고정관념 뿐이에요. 그 생각 때문에 지금 이렇게 우울하고 힘든 거예요. 안 해도 될 좌절을 굳이 하고 있는 거 라고요.(전자책)"
마음이 괜히 시큰해졌다. 그랬다. 책에서도 나오듯 누구보다 치열한 40대를 보낸 그는 40대의 이야기에 진심이다. 40대가 가진 불안, 우울 그리고 가능성. 그는 모두가 어른이라 부르고, 모두가 그들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마흔이 되면 무언가가 될 줄 알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이미 몸은 커져버렸지만 아직도 여전히 불안하고 갈 곳을 잃은 세대를 위로하며 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살면서 한 번도 나를 나답게 쌓아 올리지 못했다면, 지금도 여전히 나를 끌어내리려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면 이제는 제대로 싸워 볼 때다. 마흔이 되었으면 한 번쯤은 어른으로서 나답게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지금 못 한다면, 앞으로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조금 까칠해도 좋으니 이제는 싫다고, 아니라고, 그만하라고 말해주자. 그래야 나답게 살 수 있다.(전자책)"
아이 때문에, 부모 때문에,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때문에'를 말하며 자신의 자리를 누군가에게 내어주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사람들은 말했고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와 사람들은 말한다. 왜 그렇게 살고 있느냐고? 억울하기도 하고 어이없는 이 상황에서 책은 말한다. 싫다고, 이제 그만하라고 얘기 하라고. 그리고 나답게 한번 살아보라고.
사실 이까지는 보통의 자기 계발 강사 누구나 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40대로 돌아가 자기의 이야기를 쉬 들려준다. 15년의 무명생활, 그리고 마흔 중반에야 찾아온 유명세 하지만 오히려 더해지는 외로움과 어려움. 그저 처음부터 잘난 강사로만 알았던 내 오해가 풀리고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건 매번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다.(왜 내겐 좋은 사람에 대한 편견은 없는걸까!!ㅠㅠ)
"사람은 누군가와 연결되어야 본인이 그동안 얼마나 고립된 상태 였는지, 내 좌표가 어딘지 알 수 있다. 돈과 커뮤니티에서 멀어져 있으면 자신이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마흔이 넘으면서 인간 관계가 좁아졌다는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고립시켰다는 뜻 이다. 내가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할 판에서 멀어졌다는 뜻이 다.
이제 회사와 집만 오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세상과 연결하고 나를 확장하자. 나라는 씨앗을 세상 곳곳에 퍼뜨리자.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 속으로 나를 거침없이 보내자. 언젠가 그들과 나란히 서는 순간, 그 세상은 내 것이 될 것이다.(전자책)"
사람은 마흔이 넘어가면 더 이상 새로운 노래를 듣지 않는다고 한다. 늘 듣던 노래, 늘 듣던 자극을 평생 받으며 남은 여생을 보내려 하는 것이다. 고여있는 게 편해지고 새로운 자극에 무던해진다. 자연스레 '그런 건 애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멘트가 입에 배어버리고 만다. 나도 그랬다. 이제 겨우 마흔 줄에 접어 들었지만 애들과 나를 철저하게 분리하고 최소한의 한도,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 일만 하려 했다. 자연스레 생활 반경은 회사와 집으로 좁아지고, 마음으로는 어딘가에 가고 싶어도 '이 나이에 뭘..'라는 생각에 그냥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싣게 된다. 그런데 책은 분명히 말한다. 그러지 마라고. 아직 마흔은 괜찮은 나이라고.
사실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도, 번뜩이는 어떤 인사이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 뭐랄까 큰 누나에게 위로받은 느낌이었다. 너 아직 잘 살고 있다고, 괜찮다고, 그냥 한번 다시 해보라고. 마흔은 아직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