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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Jun 16. 2024

베스트셀러가 되고 싶던 꿈

나의 돈키호테 | 김호연 | 나무옆의자

비디오를 빌려보던 시절을 겪은 이들이라면 한 번쯤 그 풍경이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여느 아파트 상가마다 커다랗게 위치했던 비디오 가게는 최신 영화와 일반 영화의 대여 기간이나 대여 비용이 달랐다. 왜인지 어릴 적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이 비디오 가게를 꽤 좋아해서 집으로 오며 가며 항상 새로운 비디오가 뭐가 나왔는지 확인하고 이걸 빌릴까 저걸 빌릴까 고민하며 한참을 서성이곤 했다. 


영화가 좋아서 영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배우는 어려울 것 같고, 시나리오를 쓰거나 감독을 하는 건 어떨까 했다. 나중에는 정성일 씨의 글에 빠져서 영화 평론이 하고 싶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멋지던지! 아니 정확히는 영화를 통해 읽고, 말하고, 바꾸고 싶은 세상의 일에 대해 더 마음이 갔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2002년이었다.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회자될 일인데 생전에 다시 못 볼 대한민국 월드컵 4강을 보고, 삼성 라이온즈가 처음으로 KBO 리그 우승을 했다. 불가능한 일은 여기서 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선 레이스 초반만 해도 꼬꼬마 후보군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기적 같은 뒤집기를 연출했고, 우리나라 아이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했음에도 놀랍게도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 모든 일 이후 철학도였던 나는 사회복지로 전공을 바꾸었다. 2002년은 내 인생의 방향을 꽤 많이 바꾼 해로도 아마 잊지 못할 것 같다.


2002년 이후 사람들이 괜찮다고 말하는 소위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꿈이, 우리가 함께 사는 것으로 바뀌었다. 공동체라는 단어를 배웠고, 세상을 바꿀 영향력이라는 단어에 골몰했다. 이때 내 키워드 중 하나가 이 '돈키호테'이기도 했다. 어릴 적 허무맹랑한 기사의 모험담 정도로만 생각했던 이야기에 이렇게나 많은 은유와 비유가 숨어있을 줄 누가 알았던가!(우리나라 교육은 좀.. 흠) 이야기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세르반테스, 그 안에서 세상과 유유히 맞짱 뜬 기사 돈키호테의 이야기는 세상을 바꾸고 싶던 젊은 나를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산초, 로시난테, 둘시네아 공주, 거인 풍차 누구든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대입시킬 수 있었고 그를 배경으로 세상을 비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 마흔이 되었다. 나의 돈키호테는 이미 20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20년 전 술자리에 가끔 선배들이 했던 '젊을 때 맑스에 미치지 않는 사람은 바보지만, 늙어서도 맑스에 미쳐있는 사람은 더 바보'라는 격언을 삶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랬다. 지금 나는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과 나의 가족을 건사하는 일이 중요하지 공동체니 부조리니 하는 것들은 사실 매달 소액의 기부금이나 보내는 정도의 일이 되어 버렸다. 그땐 그랬지라는 옅은 미소와 함께.


잘나가던 방송국 PD인 주인공 진솔은 여러 이슈에 휘말리며 지긋지긋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대전으로 내려온다. 그 좋은 직장 다 치우고 이제 뭐하고 살 거냐는 가족의 잔소리에 뭐라도 해볼까 생각하던 찰나 그는 어릴 적 자신과 친구들에게 꿈이란 걸 알려주었던 "돈키호테 비디오"의 돈키호테 아저씨 떠올린다. 그리고 그를 찾는 유튜브 방송을 시작한다. 단지 재미있을 것 같아 시작하던 방송을 진행하며 하나하나 알게 되는 돈 아저씨의 젊은 시절과 꿈은 묘하게 우리의 젊은 날과 겹쳐진다. 결국 진슬은 돈 아저씨를 만난다. 나름의 자리에서 돈키호테처럼 살 줄 알았던 아저씨는  사실 자신이 돈키호테가 아니라 산초였음을 고백한다. 세상과 타협해버린 듯한 아저씨의 삶이 조금 맥빠지려는 찰나, 아저씨는 또 다른 꿈을 이야기한다. 산초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이야기. 끝날 것 같아도 끝나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정말 간만에 기차에서 지하철에서 걸으며 읽고 읽었다.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즐겁지만 행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던 청춘들이었다면 더 마음이 갈 것 같은 책이다. 나도 오랜만에 <돈 키호테>를 꺼내들었다. 맑스, 니체, 롤즈.. 내 청춘의 길잡이였던 사람들도 하나하나 딸려 나왔다. 그리고 그들에게 꽤 담담한 목소리로 안부를 전했다. 알려준 대로는 못 살고 있지만 그래도 나 제법 잘 살고 있다고. 고마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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