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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다르다 말하기 전에

대도시의 사랑법 | 박상영 저

by 짱고아빠

얼마 전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포스터를 보며 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책과 다른 책이 영화인가 싶기도 하고..

행여나 싶어 리뷰를 찾아보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속았다. 그런데 읽다 좀 의뭉스러워지기도 했다. 왜 이렇게 남의 사랑을 함부로 재단하는 사람이 많은가.


시간이 꽤 흘렀고 우연찮은 기회에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영화는 책 속의 단편 중 <재희>이라는 단편을 베이스로 각 단편들의 에피소드들이 적절하게 녹여져있다. 영화를 본 뒤 다시 책을 돌아보는데 이 감독 꽤 꼼꼼히 책을 읽은 듯하다. 여하튼 다이내믹 서울, 아이 서울 유에 이은 서울마이 쏘울의 도시 서울은 굉장히 많은 것들 담고 있고 지금 이 순간도 그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며, 그 다양함을 어떤 잣대로 들이대도 판단하는 이들 또한 그 다양함의 용광로에 녹아들어 가 어색하지 않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매일 광화문의 태극기를 보면 눈살은 찌푸려지지만 그러려니 하며 광화문 교보문고나 종각의 어느 식당으로 향하는 것처럼 말이다. 혹은 인왕산을 오를지도 모르겠다.


책, 아니 영화는 이 서울에 살고 있는 한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둘은 그냥 봐도 조금 다르다. 게이인 남자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만 사는 여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낙태를 위해 찾아간 산부인과 의사의 일장 연설은 우리가 늘 들었던 이야기고 아마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이 기준으로 삼고 있는 도덕 같은 것이다. 철저히 주인공의 편에서는 꼰대 같은 이야기지만 사실 그 꼰대는 나와 99%의 여러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상은 늘 조금씩 바뀐다.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명 같은 사회는 어떠한 사건, 발견 이에 따른 사람들의 사고의 전환을 거듭하며 오늘까지 발전해 왔다. 사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이단이었던 것들은 꽤나 많다. 그랬다. 도덕도 변했고 윤리도 변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지금까지는 발전이라고 불렀다.

예전과 조금 다른 점은 이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거다. 예전에는 눈에 띄지 않게 스며들었던 변화를 우리가 받아들이기 버거운 속도로 마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사 이래 가장 갈라진 사회를 마주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마 여기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에는 이 변화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보수와 진보, 이성애와 퀴어, 사랑과 증오. 심지어 정상세포와 에이즈까지. 마치 물과 기름 같은 섞일 수 없는 것들이 서울이라는 도시에 한데 담겨있고 이들은 끊임없이 부딪히고 싸운다. 그리고 재희. 재회는 이 둘 사이에서 둘 모두에게 조롱당하며 또 다른 목표를 찾아 뚜벅뚜벅 걷는다. 심지어 젊음으로만 가득한, 자유로운 연애사를 가진 여자와 게이 남자가 함께 살던 가장 포근하고 안전한 집을 뚫고도 재희는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걷는다. 설령 그 길이 보수 이성애의 상징인 결혼이라도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게 게이 친구를 베프로 정하기 개의치 않았던 것처럼.


언젠가부터 양 끝으로 갈라진 첨예한 이슈에는 주저 없이 도망가는 내게 보이는 재희의 선택에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이슈가 아닌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판단하기 앞서 그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도 나와 같은 사랑 받기 충분한 사람이라 인정하고 대화하는 것. 이게 뭐가 이리 어려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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