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 김상근 저
유럽의 역사는 희한하다. 우리와 너무 다르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라 불리는 나라들의 이면에는 지금도 부와 명예를 축척하는 몇 개의 커다란 가문이 있고 그들은 이 나라 저 나라를 옮겨 다니거나 이어지고 찢어짐을 반복하며 온 유럽 대륙을 휩쓸었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끊임없이 유린당한 작은 땅들이 있다. 시칠리아도 그랬다.
이제는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속한 한 개의 섬. 그러나 그 섬은 한 번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던 적이 없다. 그리스, 로마, 프랑스, 스페인, 합스부르크, 그리고 다시 이탈리아까지. 한 나라에 정착할 틈도 없이, 시칠리아는 2,800년 동안 14번의 침략을 받았다.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깊은 슬픔이 자라났고, 가장 풍요로운 곳에서 가장 지독한 가난이 피어났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시칠리아는 내가 막연히 생각한 휴양지 같은 곳이 아니었다. 흑사병의 진원지로 온 세상의 지탄이 되었으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마피아의 땅. 숱한 외세의 수탈과 압제 속에서 늘 고립된 땅. 누구도 그들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품지 않았고, 그들 또한 누구의 것도 되지 않았다. 침략자들은 떠났지만 상처는 남았고, 독립을 얻었지만 자유롭지는 못했다.
이 책의 표지는 김도근 작가의 <시칠리아 어부>라는 사진이다. 잔뜩 주름진 얼굴, 깊이 팬 눈가의 그늘, 그리고 바다를 향한 시선. 사진 속 남자는 오랜 세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시칠리아의 한 늙은 어부다. 저자가 그러했듯 나 또한 그의 표정 앞에서 꽤 오랫동안 할 말을 잃었다. 그곳에는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무언가를 오래 겪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감정이 묻어 있다.
바다는 늘 같은 자리에서 물결을 밀어 올리지만,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하고 사라진다. 어부의 손에 들린 그물은 단순한 생계의 도구가 아니라, 시칠리아가 품고 있는 모든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침략과 약탈, 저항과 생존. 아마도 그의 조상들은 같은 바다에서 같은 그물을 던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아무 말 없이 그 삶을 이어갔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눈물을 믿지 않는다. 너무 많이 울었기 때문이고 눈물로 해결될 게 없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기 때문이다. 지배자는 계속 바뀌었지만 그들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배층은 언제나 그들을 필요로 했지만,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러니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정해진 법이 없으면 스스로 법이 되었고,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으면 스스로 조직을 만들었다. 설령 그것이 마피아라 할지라도.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정말로 독립을 원했을까? 아니면 그저 지배자가 조금 덜 잔혹하기를 바랐을까? 역사 속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자치권을 가져본 적 없는 민족이 정말 독립을 꿈꿀 수 있을까? 어쩌면 그들은 자유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저 더는 짓밟히지 않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빛나는 지중해의 햇살 아래, 오랜 시간 바람과 파도를 맞으며 살아남은 사람들. 기꺼이 눈물을 버린 사람들. 슬픔을 삼키고, 원한을 묻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눈물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 그 아픔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여행 책이겠거니 했던 책은 꽤 큰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