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어릴때부터 그렇게 읽는 걸 좋아했다.
삼국지 10번 읽었어요는 우리 엄마의 자랑이었다.
국민학교 때 백일장에서 꽤 큰상을 받았다.
내 글이 칭찬받을 만한 글이구나라고 처음 생각했는데 이 상은 지금까지도 우리 아빠의 안주거리다.
나는 대단치 않다고 생각했던 재주들이(아니 재주라고 부를수도 없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자랑이고 훈장이었다.
<폭싹 속았수다>를 보는데 자꾸 내 부모의 그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부끄럽고 이해안되는 것들이 이해 되기도 했다.
나 그들의 자랑이었구나.
문이 닫히면 반드시 다른 문이 소리를 낸다고 했다.
물론 그렇지 못한 인생도 있을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희망 하나 없이 오늘을 살기는 어렵다.
드라마는 직접적으로 이 희망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가족.
닫힌 문을 발견하고 조심스레 눈치채지 않게 반대쪽 문을 열어놓는 사람들.
이 여닫이가 때론 거지 같아서 누군가는 줄창 이 가족놀이 제발 좀 그만하자고 말하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 가족은 그럴지라도 애틋하고 짠하다.
그게 가족이니까.
뭐 굳이 가족이 아니어도 된다.
공동체란 이름으로 엮인 이들 중 누구도 이따금식 그 문을 열어주곤 하니까.
극중 몇 안되는 악역을 담당하고 있는 학씨 아저씨의 말년에
다 떠나고 홀로남은 학씨 인생의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건 그를 평생을 두고 미워해야할 관식이었다.
가장 좋았던 건 결국 성실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는 울림이다.
인생 한방을 노리는 이들이 지금도 지천에 깔려있지만,
도 아니면 개로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천천히 또박또박 거짓없이 걸어가는 이들이 더 많다.
드라마는 그들을 ’근사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거지 같아도, 내 맘 같지 않아도, 늘 비교 당해도, 주어진 길을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꿋꿋이 걸어내고야 마는 가는 사람들.
'장해'
꼭 10살짜리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났던 엄마의 목소리다.
한 세상 양껏 살아낸 천애고아 오애순에게 보내는 엄마의 그리고 우리의 찬사.
삶이란 그런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