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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Sep 25. 2021

고양이 이름짓기

#2. 녀석은 나에게로 와서 짱고가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중략)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님의 <꽃>이다. 시인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그가 비로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성경에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 하느님은 세상 모든 것의 이름을 지을 것을 명했고, 이에 아담은 모든 것의 이름을 지었고 비로소 그것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이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세상 모든 것을 아담이 지었거나 누가 지어놓은 이름으로 불렀지 한 번도 무엇의 이름을 지어본 적이 없다. 하다 못해 별명도 함부로 지어 부르지도 않았다. 창의력도 없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뭐라고.

그런데 지금 내가 이름을 지어야 하고, 불러야만 하는 작은 꿈틀거림이 내 품에 안겨있다. 두어 달 전 비 오던 저녁. 상자 속에 담겨있던 것과 꼭 자그마한 것이 이젠 내 가슴팍에서 작은 눈을 깜빡이고 있다.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온 첫날이다.


조금스레  한가운데 아이를 놓았다.   달린 작은 솜뭉치는 킁킁거리며 집구석구석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선풍기를 툭툭 건드려 보더니 나를 한번 돌아봤다. 의자에 코를 대더니 나를 한번 돌아봤다. 진한 가죽 냄새가 처음이었나 보다. 이거 괜찮냐고 묻는  같았다. ‘안전한 거지?’ 작은 고갯짓  번인데, 마음이 터질  같았다. 녀석은 자기가  잘못 만졌다 싶으면  뒤뚱거리며 내게 왔고. 한참을 옆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용기를  탐험을 시작했다. 토요일 오후, 녀석은 한나절을 그렇게 , 거실, 화장실 곳곳을 탐험했다. 길고 조심스러운 모험이 끝나자 녀석은  옆으로   손이 닿는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눈을 감았다.(지금도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언제나  손이 닿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저도 같이 눕는다)

처음 함께 누운 날

 혼자이던 방에 처음으로 다른 생명과 함께 누웠다. 그리고 골골대며 잠든(우리 오늘 처음  사이;)  녀석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한참을 생각했다.  개의 이름이 떠올랐다 사라졌고, 머릿속을 스쳐간 이름을  개를 추려 SNS 토론을 붙여보기로 했다. 아싸 계정임에도, 고양이의 등장에  많은 의견들이 오갔고 나는 신났다. 그리고  아이의 이름은 “장민혁 고양이 줄여 “짱고 결정되었다.


장고,짱고. 어릴 적 좋아하던 만화의 우주 보안관 이름도 장고였고, 황야를 가로지르는 총잡이의 이름도 아마 장고였던 것 같다. ‘장고? 짱고 ㅋㅋ’ 이름을 읊조리며 킥킥거리자 아기 고양이는 자다 말고 눈을 똥그랗게 뜬다. 그거 내 이름이냐는 듯이.


- 이제부터 넌 짱고야. 장민혁 고양이. 나와 영혼을 나눠가진 고양이지. 넌 죽을 때까지 내가 키울 거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20년은 더 살아야 해.


마음이 좋았다. ‘나 고양이 키울 거야’라고 말했을 때, 생명을 책임진다는 어떤 무게 때문에 쉽게 반려동물을 들이지 못하겠다 말하던 이들이 있었다. 사실 나도 그랬다. 아니 그 일이 있기 전에 차마 내가 반려동물을 키우게 될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하던 나였다. 그런데 지금 손바닥만 한 생명이 코까지 골며 내 옆에 누워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초부터 계획된 일 같았다.


김춘수 시인은 노래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고 싶다고. 어쩌면 우리, 서로가 혹 지게 될지도 모를 어떤 부담 때문에 함께하는 걸 계속 미뤄두고 혼자 외로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문을 열고, 이름을 부르고, 서로 손을 맞잡기만 하면 그다음은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는데  오지도 않을 미래 때문에 그 문 앞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를 망설이고만 있는 건 아닐까.

어쨌거나 나는 짱고와의 삶을 선택했다. 이제 우리, 우리는 평생을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될 수 있을까. 짱고야 우리 그럴 수 있을까.

그 밤은 참 길고도 몽글했다.




TMI. 어른들이 고양이만 보면 ‘나비야’라고 부르는데 고양이의 평안북도 방언이 ‘나비’라고 합니다. 또 옛말에 재빠른 동물을 ‘납’이라고 불렀는데 이게 고양이의 몸짓과 합해지며 ‘나비’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썰도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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