줬으면 그만이지 | 김주완 저으면 그만이지 | 김주완 저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던 것 같다. 소소하게 바이럴 된 김장하라는 이름을 알게 되고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던 게. 저자도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하지만 이 기록은 사실상 ‘허락받지 못한 취재기’다. 왜냐하면 그의 생전에 그는 자신의 삶이 밖으로 알려지는 걸 결코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사실 예전의 <팔복>시리즈 같은 류의 감성다큐나 ‘어른’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히 대단한 어른이겠지만 ‘그래서 머 어쩌라고’라는 삐죽거림이 그냥 나한테 있다. 그를 소개하는 의도야 선하겠지만 이 소개를 통해 그는 누군가에게 영웅이 되고 나보다 조금 더 나간 이들에게는 악플의 대상이 된다. 다 떠나서 정작 그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길 꺼리고 심지어는 숨고 싶어 하는데 그걸 굳이 들춰내야 하나 싶기도 하고. 혹여 그 안에 자본주의적 의도가 섞여 있다면 더더욱 불편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장기려 그 사람>을 통해 얻은 인생의 교훈과 인사이트는 지금도 내 삶을 지탱하고 있다. 그렇게 책을 끝까지 읽었고 돌이켜보자면 이 책은 <팔복>보다는 <장기려>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뭐랄까 지금 내 삶을 다시 한번 톱아보게 되었다.
김장하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만 졸업하고 한약사로 성공해 큰 부를 일궜다. 그러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건 돈을 번 이야기가 아니다. 소문에 의하면(이제는 취재에 의하면) 그는 사업을 시작하며 자기 직원들에게 말도 안 되는 대우를 해줬을 뿐 아니라(타 한의원과 비교하여 2-3배 많은 급여와 복지제도까지) 사업 초창기부터 재단을 만들에 가난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었고, 누구나 가고 싶은 사립학교를 일구고는 국가에 헌납했고, 사업을 접으며 대학에 수십억을 기부했다. 교육, 문화, 예술, 인권까지 단 하나 정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그는 베풀고 또 주었다. 그럼에도 자기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받은 사람은 있는데 준 사람은 보이지 않는 기묘한 선행이 반세기 가까이 이어졌다.
선한 영향력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선생의 장학금을 받고 공부한 이들은 김장하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그가 살았던 삶을 따라 무던히도 걸어가려 노력하는 중이다. 이번에 유명해진 문형배 판사 역시 그중 하나인데 그가 처음 헌법재판관에 임명될 때 했다는 이야기도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제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습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최근 통계를 봤는데 평균 재산이 가구당 한 3억 남짓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재산은 한 4억 조금 못 되는데요…(그래서 죄송하고 송구합니다)"
평균의 삶에서 벗어나지 말자라니.. 어떻게든 벌고 또 모으는 것이 시대정신인 시대에 이게 할 소린가 대체.
"버렸으면 미련 없이 버려야지. 줬으면 그만이지"
그가 감사패를 한사코 거절하며 뱉었다는 이 한 마디는 그래서 묵직하다.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깊이이자, 내 언어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어른의 무게다.
돌이켜보자. 우리는 왜 늘 무엇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걸까. 왜 준 것을 기록하고, 남기고, 누군가에게 치장하려 드는 걸까.
줬으면 그만이지. 감히 흉내 내기도 어려운 말 앞에 서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