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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Oct 04. 2021

고자라니.. 내가 고자라니!!!

#7. 짱고, 땅콩을 떼다 / 고양이 중성화 수술

반려동물에게는 피치 못할 숙명 같은 게 있다. 물론 동물의 번식권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손에 자손까지 책임져 주는 훌륭한 집사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로 좋은 집사는 못된다. 잠시 잠깐 짱고의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언뜻 지나갔으나 감당하지 못할 일은 접어두는 게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짱고의 안위는 차치하고서라도 수컷 고양이 발정기에 온다는 스프레이(온 집에 소변을 뿌려대는 행위, 마킹이라고도 함. 정확히는 영역을 주장하는 행위로 다른 고양이를 데리고 들어왔을 때도 종종 이런 행동을 보이기도 함)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더 무서운 건 발정기가 온 수컷 고양이가 언제든 방묘망을 뚫고 욕정을 찾아 우리 집을 탈출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짱고가 우리 집에 온 지 어연 3개월, 입양 당시 3개월령을 데려왔으니 태어난 지 막 6개월을 지나는 시점이었다. 고양이의 중성화 수술 적기는 첫 발정이 오기 전 5-6개월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첫 발정이 오고 난 후에는 스프레이 같은 행동이 습관으로 남을 수도 있기에 가능하면 첫 발정 전에 해야 한단다. 빠르면 4개월에도 발정이 오는 녀석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너무 어린 시기에 수술을 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몸무게가 어느 정도(2.5kg 이상)는 돼야 한다고 하셔서 6개월이 되는 날을 D-day로 잡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누가 그랬다. 고양이는 예지 능력이 있는 동물이라고. 그날도 그랬다. 어젯밤까지 똥꼬 발랄하던 녀석은 아침부터 침울했다. 마치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예방접종 때만 하더라도 케이지에 곧잘 들어가던 녀석이 이내 격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아직 아기아기 할 때라 작은 저항이 있더라도 케이지에 넣는 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는데 정말 이날 짱고의 저항은, 말 그대로 필사적이었다. 아니 필사적이란 단어로 표현이 안될 정도로 악다구니를 써댔다.


- 냐아아아아아아아아앙!!!!!!


케이지를 벗어나려는 고양이의 난은 성인 남자 두 명이 아기 고양이를 상자 안에 욱여넣고서야 진압되었다. 팔에는 온통 긁힌 자국이다. 아직 3개월밖에 같이 안 살았지만 이런 모습, 낯설다. 잔뜩 웅크린 녀석에게 케이지 너머 츄르를 건네보았다. 찔끔찔끔 받아먹는다. 이제야 조금 진정되는 모양이다.


수컷인지라 중성화 수술은 어렵지 않다고 한다. 암컷은 자궁을 제거하기에 조금 복잡하지만 땅콩 떼는 짱고의 수술은 오래 걸리지는 않는단다. 다만 마취에서 깨어나는 걸 확인해야 하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될 때까지는 병원에서 보호하는 게 좋다고 해서 오전에 몇 가지 검사를 진행하는 고양이를 보고, 오후 늦게야 병원을 찾았다. 선생님은 수술은 잘 되었다며 씩 웃으며 짱고의 몸에 있었던 땅콩 두 개를 보여주었다. 아.. 굳이 이럴 거까지야 싶을 정도로 그로테스크 하긴 했다.


중성화 수술 이후 성격이 바뀌는 녀석들도 있고, 살이 갑자기 찌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갑자기 설사나 구토, 호흡곤란이 오는 경우는 잘 관찰하다가 언제든 즉시 병원으로 데려 오라고 하셨다. 먼저 마취가 완전히 깨고 안정화될 때까지 한 나절 정도는 진정할 수 있게 어두운 곳에 혼자 두는 게 좋다고 한다. 아 그리고 환부를 핣을 수 있으니 목 카라는 일주일 정도 풀면 안 된다고 했다.

받아 든 케이지 속 짱고는 떨고 있었고, 으르렁거렸다. 내가 알고 있는 짱고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맹수의 모양을 하고 있는 녀석을 조심스레 방에 풀어놓았다. 우리 같이 좋았던 시간은 다 어디가고, 곧이라도 잡아먹을 기세. 사료와 물, 그리고 화장실 모래가 충분한지 확인하고 방문을 닫았다. 으르르르르... 방문 너머로 처음 보는 짱고가 으르렁대고 있었다.


거실에 앉아 고양이 중성화에 대해 검색해보고 책을 보았다. 방안의 녀석은 잠잠했다. 자나? 열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밤이 되었고, 의사 선생님이 일러준 대로 충분히 안정되었을 것 같은 시간에 문을 열었다. 짱고다. 고양이는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예의 모습처럼 자박자박 걸어 나왔다. 목 카라가 굉장히 거슬리는 것 같았지만 예전처럼 '냥'하고 우는 걸 보니 잘 회복한 것 같았다. 다행이다. 하지만 그 순간 불길한 예감이 나를 휘감았고, 어지간해서 이런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큼큼한 냄새. 설마. 아침에 케이지에 갇히는 순간부터 수술, 회복이라는 긴 여정을 헤쳐 나온 내 고양이는 마취의 여독인지, 소심한 복수인지 온 방을 똥밭으로 만들어 놓고야 말았다. 누가 고양이 똥을 맛동산이라고 불렀나. 고양이는 책상 위부터 이불속까지 골고루, 세심하고도 꼼꼼히도 제 똥을 처발라 놓았고 나는 밤새도록 이불을 빨고, 바닥과 침대, 책상을 닦고, X묻은 책이니 노트 따위를 버렸다. 그리고 환부 때문에 차마 물에 넣을 수도 없는 고양이의 손발과 털을 물티슈로 닦고, 고양이 안아들다 똥 묻은 내 옷을 닦고, 고양이를 닦고, 또 내 옷을 닦는 일을 밤새도록 반복했다.

이후 일주일 동안 함께 사는 형은, 내 방이고 고양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TMI

고양이가 마취에서   보통은 사나워집니다. 어두운  혼자 두는  좋다는데  사건 이후  무조건 화장실에 가둬버립니다.  미안하지만 똥밭에서 고양이와 구르고 싶지 않으시다면  마취 이후에는 반드시 화장실에 가둬두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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