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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Sep 29. 2021

고양이가 피부병에 걸렸다

#5. 고양이에게 빨간약을 바르라구요??

짱고와의 첫 만남에, 잘 확인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부분이 있었다. 짱고는 처음부터 오른쪽 눈두덩이의 털이 적었다. 아니 없는 편이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털이 빠지는 속도가 눈의 띄게 빨라지고 범위는 계속 넓어졌다. 조금 더 있자니 눈도 제대로 못 뜨는 것 같았다. 병치레하는 고양이를 속여서 팔아넘긴다는 펫샵의 횡포와 몰상식에 대해 읽은 적이 있는데 혹시? 그렇게 검색을 하고 또 알아보고 찾은 샵인데 결국 나도 당한 거란 말인가. 속에 천불이 나고 부아가 치밀었다.

하지만, 이미 짱고가 되어버린 이 고양이를 도로 놓아두고 내 돈 내놔라고 할 순 없었다. 나는 이제 이 녀석 죽을병에 걸렸더라도 안고 가야 할 집사가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고양이가 내 앞에 있었다.


이미 분양 후 한두 주가 지난 시간이지만, 일단 펫샵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전화와 방문을 포함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혼자 짜 보았다.

첫째, 일단 가서 둘러엎고는 환불!! 은 안되고 분양비의 얼마를 되받아 온다.

둘째, 이건 병원 가서 고칠 터이니 병원비(와 약간의 위로금)를 요구한다.

셋째, 인터넷 카페나 커뮤니티에 이 비윤리적인 행태를 알린다 협박하고 샵이 제시하는 조건을 들어본다.


식당에서 반찬 리필도 잘 못하는 주제에 상상력은 자꾸 커져만 갔다. 먼저 짱고의 눈두덩이가 분양 당시부터 좋지 않았다고(조금은 격양된 목소리 연기톤으로) 통화를 끝냈다. 한 번 데려오라는 직원의 이야기에 최대한 빠른 시간을 골라 짱고를 데리고 펫샵으로 향했다. 몰랐는데 꽤 큰 가게이었고 일하는 직원도 꽤 많았다. (분명 두 번째 방문인데 왜 처음 오는 것 같지?)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곧 이모라고 불리는 이가 안에서 나와 짱고를 둘러 안았다. 작은 고양이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이내 곧 이건 <링웜>이라는 피부병이고 고양이에게 흔히 나타나는 피부병이라 설명했다. 쉽게 얘기해 피부 곰팡이인데 소독만 잘하면 금방 나으니 걱정 말라며 치료하는 법을 알려준단다. 먼저 미안하다고 할 줄 알았는데.. 계획한 모든 시나리오가 틀어졌다. 이모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자그만 철제 침대에 짱고가 놓였다. 아기 고양이는 낯선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순간 이모가 작은 고양이의 목을 우악스럽게 눌렀다. "냐앙!!"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고양이는 바둥거렸고, 이모는 짱고의 목덜미를 있는 힘껏 움켜쥐고 털 빠진 눈두덩에 약품을 바른 솜을 치댔다. 저 작은 고양이를 온 힘으로 움켜쥐고는 계속 이렇게 약으로 닦아내야 한다며 이틀에 한 번꼴로 약을 발라주란다. 순식간에 공수교대. 알았으니 제발 내 고양이 놔달라고 사정했다. 혼비백산한 고양이는 다시 내 품에 안겼다. 그 약의 이름이 뭐냐 물으니 빨간약을 물에 희석시킨 거란다. 어디서 사냐 물으니 집에 가는 약국에 팔 거란다. 맞다. 그 빨간약. 포비돈.


충격과 공포에 준비해 간 말은 한마디도 채 하지 못하고 내 고양이를 안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등 뒤로 또 다른 고양이의 비명이 들렸고, 아까 긴장 때문인지 미처 못 본 글자가 보였다. 무마취 미용 전문. 내가 고양이 털로 옷을 해 입을지언정 무마취 미용은 하지 말아야지.


돌아오는 내도록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이미 평온을 찾은듯한 고양이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고, 나는 빨간 약을 샀다. 몇 번 발라주다 차도가 없는 것 같아 그냥 동물병원을 찾아 약 처방을 받았다. 그냥 먹이기는 힘드니 간식과 섞어주라고 해서 습식 사료라는 것도 샀다. 짱고가 습식을 싫어하고, 건사료만 먹는다는 걸, 간식이라고 유일하게 먹는 건 츄르 밖에 없다는 것도 이때 알았다. 약은 츄르와 섞어 먹였다. 약을 섞으면 귀신같이 알고 안 먹는 고양이도 있다던데 이건 더 달라고 난리다.

나는 손에 뭘 묻히고 먹는 걸 싫어한다. 짱고도 습식 사료의 끈적거림이 싫은 모양이다. 나도 어릴때 야채가 고기 속에 섞여있는 걸 알면서도 꾹 참고 먹었다. 짱고도 약섞인 츄르를 알고도 먹는 것 같다.

누가 그랬다. 함께하면 닮아간다고. 그게 고양이가  줄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예전엔 그저그랬던 유치한 말들이 하나하나  이야기가 되었고, 나와  닮아 보이는 고양이가 신기하게도  품에 있었다. 눈두덩이에 빨간 약을 바른 고양이가 나를 가만히 올려다 보았다. 편안해 보였다.


링웜은 이모 말마따나 쉽게 낫는 병이었다. 몇 주 소독하고 약을 먹으니 털이 빠진 자리에 제 모양의 털이 나기 시작했다. 한쪽 눈을 힘겹게 깜빡거리는 행동도 사라졌다. 하지만 이후 누구에게도 샵 분양을 혹은 빨간약 치료 같은 샵에서 어떤 시술이든 권하진 않는다. 그리고 이 작은 고양이에게 행여 다른 병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걱정병이 생겨버렸다. 하.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참.



TMI

#1.

펫샵 분양시 반드시 고양이의 건강증명서를 받아두는 것이 좋다. 예방접종 유무도 반드시 확인할 것.

#2.

병원에서 확인한 결과 빨간약은 링웜에 사용하는 소독제가 맞았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을 위해 병원치료는 필수

#3.

미리 사 둔 습식사료들은 결국 길냥이들의 양식이 되었고, 우연찮은 기회에 길에서 사는 친구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캣 대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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