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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Sep 27. 2021

어쩌면 강아지의 영혼을 품은 고양이

#4. 너를 어떻게 두고 출근하니 내가 ㅠ.ㅠ

데굴데굴, 짱고가 처음 우리 집에 온 그 주말은 정말이지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만지면 부서질까, 바람 불면 날아갈까 아주 꼬물대는 솜뭉치를 보는 재미가 아주 세상 다 가진 기분이었다. 짱고도 이런 맘을 아는지 최선을 다해 꼬물거렸다. 책을 읽는데 다리부터 팔, 어깨까지 열심히 기어 오른 아기 고양이는 그만 어깨 위에서 풀썩 쓰러지기도 했고, 아무렇게나 쓰러져 새근새근 자다 드르렁 코를 골기도 했다. 제 코 고는 소리에 놀라 눈을 깜빡이다(나 코 안 골았다) 다시 잠들기도 하고, 딱딱한 바닥은 영 불편한지 콩콩 걸어와(기어와) 반쯤뜬 눈으로 무릎 위에서 골골대다 잠들기도 했다.

우리는 같이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잠을 잤다. 난생처음 해보는 고양이  주기,  주기, 화장실 치우기 미션도 나는 곧잘 해냈다. 언젠가 용기  데이트를 신청했을  '미안,  주말에 고양이 봐야 '라고 돌아섰던 아이의 이야기가 진짜였다는 것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주말이 사라지고 월요일이 왔다. 죽을 것 같은 몸을 일으켜 출근할 채비를 한다. 씻고, 옷을 입고, 대충 냉장고에 뭐가 있나 보려는 찰나 거실 한쪽에 예쁘게 앉은 짱고가 눈에 들어왔다. 빤히, 정말 빤히 냉장고 문을 열고 있는 내 얼굴을 고양이는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방을 들고 현관을 나서는 나를 꼼짝 않고 지켜보았다. (뭐지 이 녀석) 현관문이 닫기는 순간 짱고가 나지막이 냥하고 울었다. '가지 마'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녀와' 하는 거 같기도 했다. 우와. 다시 문을 열어 빼꼼히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꼼짝없이 그 자리에 앉아 또 냥하고 울었다. '다녀와' 쪽이 맞는 것 같다.


그날은 팔불출처럼 고양이 얘기를 그렇게 하고 다녔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정신 빠진 놈', 젊은 여직원들에게는 '고양이 보고 싶다'는 피드백을 주로 받았고, 그렇게 휴대폰을 열어 고양이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하하하하. 모든 저녁 약속을 뿌리치고 곧장 집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 냥


아무도 없던 내 집에서 무언가가 자박자박 걸어 나왔다. 아침에 그 자리다. 짱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다리 밑으로 자박자박 걸어와 발라당 누웠다. 어? 조금 이상했지만 한참이나 그렇게 고양이 배를 쓰다듬었고, 고양이는 스스로 만족할 즈음 일어나 한 번 더 얼굴을 내게 부비적거렸다. 이상했다. 이건 분명 강아지의 행동이다!


홈캠이라는 걸 사버렸다. TV에서 혼자 있는 반려견이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이 아파서 강아지는 못 키우겠다 싶었는데, 그랬는데 왠지 이 고양이도 그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분명 그랬던 것 같았다. 누가 그랬나. 고양이는 개보다 독립심이 강하고 외로움도 덜 탄다고. 그런데 집사가 집을 나서자 꼼짝 않고 앉았다가 퇴근한 집사 앞에서 발라당이라니 이 무슨 개들이 하는 짓이란 말인가. 이러면 내가 널 두고 어떻게 출근하니 엉엉.

며칠 뒤 홈캠이 도착했고 나는 설렘 반 걱정 반으로 현관이 잘 보이는 곳에 캠을 설치했다. 며칠 째 처음과 마찬가지로 출근하는 나를 짱고는 위아래로 스캔했고, 집을 나서는 내게 또 '냥'이라고 인사했다. 첫날은 분명 '다녀와' 같았는데 다시 들어보니 '가지 마'로 들렸다. 마음이 아팠다.


주차장에 내려와 시동을 걸기 전 휴대폰을 열어 홈캠을 켰다. 두근두근. 짱고가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앉아있으면 어쩌지라는 걱정과 또 그랬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묘하게 같이 일었다. 마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현관이 닫히자 마다 침대로 쪼르륵 달려가 몸을 누이는 내 고양이를. 5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코까지 골더라. 헐. 저렇게 세상 편하게 자는 모습은 처음, 며칠 안 봤지만 와 진짜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랑 잘 때는 툭 건드려도 깼는데 지금은 누가 업어가도 모를 폼으로 잔다.


그리고 그날  나는  보았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부리나케 아침  자리로 뛰어오는  고양이를. 마치 내가  하루 종일 기다렸다는 듯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앉아있는,  강아지의 영혼이 살짝 들어왔다 나간  같은 요망진 고양이를.

난 사실 모든 걸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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