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 이지민 저
지금 어디든 여행할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늘 뉴욕을 떠올린다.
미드 <프렌즈>의 도시, 언젠가는 꼭 찍고 싶은 브루클린 브릿지, 연말 카운트다운 때 서 있고 싶은 타임스 스퀘어.
이런 것들의 나열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들뜬다. 그런데 그 도시 한편에 '커피를 팔지 않는' 책방이 있다고?
뉴욕을 그리워하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런 제목은 거의 반칙에 가깝다.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뉴욕에서 살아온 이의 기록이다.
프리랜서이나 엄마로 가족과 함께 브루클린을 찾는 저자는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있는 동네 책방의 매력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아이와 함께 책을 고르고, 읽고, 다시 다음 책방으로 건너간다.
그 반복 속에서 그는 직접 방문하고 인터뷰한 11개의 책방이 무엇을 지켜내고 있는지를 천천히 관찰한다.
저자가 말하는 '좋은 동네 책방'’의 정의는 꽤 구체적이다.
주인은 반갑게 맞이하되 책 읽는 모습을 모른 척해 주고, 잔잔한 음악이 주변 소음을 덮어주며, 눈이 피로하지 않을 만큼의 조명이 있는 곳.
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실 요즘의 많은 책방과 카페는 너무 많은 것을 제공하려 한다. 커피, 디저트, 굿즈, 이벤트.
물론 유지를 위한 선택이겠지만 책이 중심이 되는 공간에서는 책을 위해 덜어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커피를 팔지 않는다는 선택은 낭만이 아니라 책에 집중하기 어떤 결정이다.
저자는 책방은 우연을 꿈꾸게 하는 곳, 정답을 강요받지 않는 곳, 마음껏 헤매도 되는 곳이라고 정의한다.
원하는 책을 찾으러 가면서도 그 기쁨을 일부러 늦추고, 찾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 방황의 시간이야말로 책방이 주는 가장 큰 환대라고 말한다.
이 환대를 상상만 해도 저자는 행복해하고 마음이 들뜬다.
무엇을 살지 몰라서 들어오는 사람들, 확실하지 않은 무언가를 찾는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
문학은 그렇게 시작된다는 저자의 말은 이 바쁜 도시 뉴욕에 책방의 존재 이유를 알려준다.
브루클린 책방의 생존 전략은 결국 사람이다. 그곳에는 서점주와 직원, 그리고 그 책방을 지키는 동네 주민들이 있다.
팬데믹의 위기 속에서 크라우드 펀딩 등으로 책방을 살려낸 이들은 책이 지닌 복잡한 속성을 단순하게 바꾸는 법을 알았다.
거리 곳곳, 집 앞마다 무료로 놓인 책들이 널려있고, 우체통 모양의 무료 라이브러리는 먹을 것과 책들이 가득 쌓여 있다.
이렇게 무게 가 한껏 덜어진 책은 교양의 상징이 아니라 일상의 사물로 존재한다.
음식처럼 나누고, 필요하면 가져가고, 다시 흘려보낸다.
어릴 적에 자주 가던 동네 책방이 있었다. 책을 좋아했던 나는 그 서점 아저씨를 유난히 좋아했고
지금은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마뜨'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동화책을 아저씨와 자주 읽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 서점의 주인이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그 서점에서 감히 해리포터를 구입하지도 않고 서서 읽다가 쫓겨나고 말았다.
만약 그때 그 주인이 내게 조금만 다정했다만 내 인생의 경로도 조금은 달라졌을까.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동네 책방들이 인스타 감성에 충실하기 보다 이런 역할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뉴욕의 많은 책방들이 그러한 것처럼.
책방을 지키는 사람의 모습에서 언어를 옮기는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살아갈 힘을 얻고 싶다는 저자의 고백처럼, 이 책은 내게도 비슷한 힘을 건넨다.
책이 사라지지 않고 활자로 남아 언제든 펼칠 수 있는 위로라는 사실이 유난히 고맙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그런 날이라면 가까운 동네 책방으로 천천히 걸어가도 좋겠다. 찾던 책을 바로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은 조금 더 헤매도 괜찮은 날이니.
당신에게도 그런 책방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