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짱고책방

왜 미술계에는 젠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 비앙카 보스커 저

by 짱고아빠

'왜 미술계에는 젠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라는 질문을 가진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이런 우리 모두를 대표하여 그가 나섰다. 사실 서문을 읽는데 속이 다 시원했다.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를 펼치며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경외나 동경이 아니라 묘한 통쾌함이었다. 미술관에 들어설 때마다 괜히 자세를 고쳐 앉게 되는 마음, 잘 모른다는 이유로 질문을 삼키게 되는 분위기, 예술 앞에서만 유독 작아지는 그 감각을 저자는 너무 정확하게 짚어낸다.

책은 예술을 이해한 사람의 설명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어서 안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의 기록이다. 미술을 다룬 여타 책들과는 전제부터 조금 다르다.

미술계를 체험하다


저널리스트인 비앙카 보스커는 이를 취재하기 위해 직접 미술계로 뛰어든다. 브루클린의 작은 갤러리에서 말단 직원으로, 아트 페어의 현장 노동자로, 그리고 마침내 구겐하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미술계 안쪽에 몸을 담근다.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캔버스를 나르고, 팔리지 않는 그림 앞에서 진땀을 흘리고, 억만장자 컬렉터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서 있는 장면들은 화려하기보다 솔직하다.


그는 그렇게 다가간 예술을 설명하지 않고 겪는다.

그래서 이 책은 미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어쩌면 한 사람이 어떤 세계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담고 있는 에세이에 가깝다.



오래 바라본다는 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한국인이면 모두가 아는 시를 그 역시 우리게 들려준다.


"예술은 우리를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게 한다. 물론 다른 것들도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예술은 전적으로 그 목적만을 위해 만들어졌다."


예술을 생각하면 우리는 자꾸 의미를 먼저 찾는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왜 이게 중요한지.

그런데 이 문장은 방향을 바꾼다. 예술은 이해시키기보다 우리를 다른 길로 데려가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객이 한 작품 앞에 머무는 평균 시간이 17초라고 한다. 사실 나도 그랬다. 나 역시 작품보다 설명 패널을 더 오래 읽고, 사진 한 장 남기면 끝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겐하임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며 한 작품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을 때 저자는 말한다.

억지로라도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작품이 달라지고 자신도 달라진다고.



아름다움의 정답은 없다


"아름다움은 특정한 물리적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름다움은 우리의 마음이 한계를 뛰어넘는 그 순간이다."


결국 저자는 아름다움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무엇이 아름다운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겪어왔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예술은 늘 사적인독서처럼 읽힌다. 남의 이야기 같다가도 어느 순간 내 이야기로 번져온다.

남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나에겐 아름다웠던 순간들, 시간들. 그것은 매우 주관적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훌륭한 예술은 희귀하다고 말하는 미술계 사람들을 떠올리며 저자는 답답해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움은 비싸지 않고, 사치스러운 취미가 아니며, 만나기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희귀한 것은 우리의 관심이라고.

훌륭한 예술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유명한 누군가의 작품이 아니라 내 아이의 작은 그림일지라도 우리는 그곳에서 따뜻함과 사랑을 본다.

그것이다. 예술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점이. 우리가 비로소 예술을 알게 되는 지점이.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는 예술 입문서이자, 삶의 방향을 묻는 책이다.

잘 몰라도 괜찮고, 질문해도 괜찮고, 오래 바라봐도 된다고 말해준다.


아마 다음에 미술관에 가게 된다면 나는 아마도 한 작품 앞에 조금 더 오래 서 있을 것 같다.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불안을 견디는 연습, 맡김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