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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짱고책방

불안을 견디는 연습, 맡김의 시작

믿고 맡기는 요령 | 야마모토 와타루 저

by 짱고아빠

잘난 체를 좀 하자면 손이 빠른 편이다. 손만 빠른 게 아니라 일머리도 좀 있다.

그래서 오래도록 ‘믿고 맡긴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어쩔 수 없이 남에게 일을 맡겨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왔는데, 그게 늘 어려웠다.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라면 믿고 맡기고, 아니라면 내가 밤늦게까지 야근해서라도 일이 잘 끝나도록 챙겨버렸다. 나도 안다. 이것이 좋은 방식은 아니라는걸. 그래도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나도 살아야지.

그러던 내게 이 책은 아주 단순하지만 단단한 메시지를 건넨다. 맡겨, 그냥.


VUCA 시대에는 맡김이 필요하다


책은 오늘의 경영 환경을 VUCA(변동성 Voamiy, 불확실성 Uncerainty, 복잡성 complewity, 모호성Amboguts)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과거의 성공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정답은 사라지고, 변화는 예측할 수 없고, 문제의 흐름은 훨씬 빠르게 바뀐다.

이런 시기에 과거와 같은 수직적 명령형 리더십은 작동하기 어렵다.

책은 이러한 흐름을 가져간다. 명령형 리더십보다 공감형 맡김과 자율형 리더십이 필요하다.


나는 왜 일을 맡기지 못할까. 곰곰이 생각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다들 비슷할 것이다.

맡기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팀원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나의 불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빠르다"는 말 뒤에는 실수의 책임, 시간의 손실, 통제 불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 불안을 부여잡은 채 계속 떠안는 방식으로는 리더도, 팀도, 조직도 점점 소진될 뿐이다.


결국 맡김은 그래야 한다는 대승적 결정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일을 누구에게 맡기느냐보다 중요한 것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일의 맡김을 일 나누기가 아니라 사람 설계의 문제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이 그 사람의 적성과 의욕에 맞느냐이다."

맞다. 일을 잘하는 이에게 맡기면 기본은 하겠지만 그 사람의 적성과 의욕에 맞는 일을 맡긴다면 그는 충분히 +a를 해낸다.


책은 의욕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A형: 스스로 성장·경험·성취에서 동기를 얻는 사람

B형: 인정·보상 등 외부 자극이 동기를 만드는 사람

C형: 타인·팀·가치에 기여하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


연차와 나이에 따라 유형이 바뀌는 경우도 있겠지만 팀원들이 어떤 유형인지 파악하고 그에 준하는 일을 맡기라는 것이 책의 추천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보통 일이 먼저 있고 그 일을 담당할 사람을 정한다. 하지만 책은 반대로 말한다.

사람을 먼저 세우고 그 결에 맞는 일을 설계하라고.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껏 실패한 맡김은 '일은 해야지'라는 대명제 아래 있는 사람들을 갖다 붙였다.

이 방식은 결국 모두를 지치게 만든다.

반대로 적성과 의욕을 기준으로 맡기기 시작한 순간, 팀은 스스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개입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동력을 키우는 쪽으로 개입하는 일. 이것이 지속 가능한 리더십의 핵심이다.



팀이 스스로 움직이는 구조를 만드는 기술


책은 리더가 없어도 돌아가는 팀을 목표로 삼는다.

이를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네 가지 축은 다음과 같다.


작게 맡기고 즉시 피드백하는 성장 루프

실패를 학습 자원으로 전환하는 시스템

칭찬과 피드백의 기술

개인의 목적과 팀의 목적을 연결하는 설계


듣기만 해도 단순한 것 같지만 실패하는 리더가 매일 놓치는 것들이 바로 이런 지점들이다.

'내가 없으면 안 굴러가는 팀'은 어쩌면 자랑이 아니라 리스크다.

팀이 자력으로 움직이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운영력이며 그것이야말로 리더십의 본질이다.

결국 좋은 리더란 좋은 매니저의 다른 이름이다.



맡김은 리더도 살리고, 팀도 살린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나는 일을 잘하는 편이다.

혼자 하는 일에서 이 효율은 극도로 빛을 발한다.

하지만 그 방식은 내가 계속 빨라야만 유지되는 팀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는 그 속도를 영원히 유지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맡긴다는 건 결국 팀원을 키우는 일이면서 동시에 나를 살리는 일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아주 단순하다.

불안을 견디고, 맡길 용기를 내는 것.


와씨 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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