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짱고책방

폐지 줍는 노인에 관하여

<가난의 문법> 소준철 저

by 짱고아빠

나는 사회복지사다. 처음부터 사회복지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했고, 좋은 카운셀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공부를 계속할수록 반복되는 말에 지쳤고, 삶과 상관없어 보이는 논쟁이 지루해져 버렸다. 그러다 넝마주이들을 재교육하여 살아가는 공동체를 접했다. 나는 말로 하늘의 언어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발붙인 이 땅에 살아가기로 했다.

학부 시절 나는 부지런히도 자활이나 가난, 인권, 정책에 관해 공부하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여기에 맑스와 니체, 롤즈가 더해지니 어느덧 나는 철 지난 운동권의 언어를 외치는 별종이 되었다. 빈곤, 자활, 공동체, 사회적 경제 같은 단어들이 나의 키워드였다. 그리고 이 책은 빈곤과 사람을 말하던 20년 전 그때 그 시절로 나를 데려가 주었다.


책은 도시하층민, 그중에서도 넝마주이의 후예들. 폐지 줍는 노인에 관한 기록이다. 정확히는 그들에 관한 연구이며, 이 재미없는 이야기를 보완하기 위해 저자는 윤영자라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여 그의 삶을 되짚어가며 통해 오늘날 폐지 줍는 노인의 하루를 보여준다.


올해로 65세가 된 영자씨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가게 서무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결혼 후 남편은 돈을 벌러 인도네시아로 떠났고 홀로 아이들을 키웠다. 큰돈을 벌어올 줄 알았던 남편은 시원찮게 귀국했고 그 돈으로 몇 가지 사업을 벌였지만 다 망했다. 영자씨는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며 화장품 방문판매를 시작했고, 남편은 택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열심히 산 부부는 어느덧 단독주택 한 채를 장만할 정도로 사정이 좋아졌고. 3남 3녀의 자녀들은 모두 결혼해서 출가했다. 문제는 IMF가 터지면서다. 큰 사위가 은행에서 잘리며 큰딸은 사업 자금을 요청했고, 아들에 치여 자란 딸에 미안한 영자씨는 모아놓은 돈의 일부를 줬다. 다음은 막내딸이었다. 2003년 이혼한 막내딸은 아이와 함께 살아보겠다며 영어학원을 내겠단다. 막내에게 남은 돈을 주었다. 이번엔 첫째 아들이 찾아왔다. 늘 위태하던 첫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한다며 유산을 당겨줄 것을 요청했다. 영자씨 부부는 집을 팔아 주었다. 후에 이를 알게 된 둘째들과 몇 번의 언쟁이 있었고 둘째들은 부모를 찾아오지 않는다. 첫째들의 사업이 처음에는 괜찮은가 싶더니 결국 그 둘도 부모를 찾는 경우가 점차 뜸해지기 시작했다. 덮친 격으로 남편은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막내가 남편을 돌보겠다 했고, 영자씨는 전세집 줄이고 줄여 이젠 반지하 단칸방에서 홀로 지낸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부양의무자인 자녀들이 있기에 생계급여는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결국 영자씨는 고물상에게 부탁해 작은 카트를 하나 얻었고 그렇게 폐지 줍는 노인이 되었다. 영자씨의 단독주택이었던 동네에는 커다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영자씨는 매일 그곳을 지나며 나도 저기에 살 수도 있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 지난 일이다.


다소 길게 설명했지만 이런 영자씨의 삶은 어떤 사회의 도움도 받지 못한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살아온 이 시대 노인들의 보통 모습이다. 그리고 문제는 그들이 늙어버린 지금이다. 노화로 인한 신체적인 한계뿐 아니라 가족 간의 문제, 개인적인 실책 등으로 심각한 재정난, 정서적 고독에 처한 사람도 있다. 물론 이들의 가난이 개인의 나태에 근거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작금의 코로나로 인한 경제난이 그러하듯, 부의 이동은 개인의 노오력보다 사회구조 안에서 결정되는 게 더 크다. 이는 비단 가난이 아니라 부동산에 의한 부를 선물 받은 이들도 같다.


사회가 그를 가난하게 만들었다면, 아니 정말 그의 개인적 실책으로 삶의 막다른 골목에 처했다 할지라도 국가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은 그 역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간다운 삶을 제공받으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당연하기만 한 이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같은 이들은 기꺼이 세금을 내야 하고, 이재용의 손자가 받는 무상급식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약간의 사민주의 사회로 이동하기 위해서 더 많은 토론과 논의가 필요한데 이 논쟁은 어딘가에서 완전히 잠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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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마땅할까? 연민해야 할까, 쓰레기를 치워주는 데 대해 감사해야 할까, 아니면 책임과 부당함을 느껴야 할까? 그들 자체에 대해 연민이나 감사함을 느끼기보다는 그들이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이 사회를 바꾸고 고칠 궁리를 해야하는 게 아닐까?(p.119)


가난의 문법, 소준철 저, 푸른숲,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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