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다시 꺼내보는 영화 <캐롤>
연말만 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누구는 나홀로집에, 누구는 러브액츄얼리를 떠올리는데 나는 이 영화 캐롤이다.
거리에는 불이 켜지고, 백화점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모두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계절.
이 영화는 바로 그 시기의 공기를 닮아 있다.
차갑고, 붐비고, 그럼에도 어딘가 따뜻한 기척이 남아 있는 시간.
이야기는 1950년대 뉴욕의 어느 백화점에서 시작한다.
백화점 점원 테레즈와 손님 캐롤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우연히 마주친다. 말 몇 마디, 시선 몇 번.
그러나 그 짧은 만남은 강렬했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고, 계획도 없고, 다만 서로를 알아본 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이렇게 시작되는 사랑의 서사를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그 사람인가, 왜 지금인가, 왜 이 관계인가. 그런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길고 따뜻하게 보여준다.
둘의 눈길이 머무는 시간, 대답 없는 침묵, 창밖을 바라보는 얼굴.
캐롤에서 사랑은 어떤 사건이 아니라 존재 혹은 어떤 상태에 가깝다.
사랑을 몰랐다가 사랑을 알아버리게 된 어떤 상태.
테레즈는 결핍 속에 있고, 캐롤은 갇혀 있다.
한 사람은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다른 한 사람은 알지만 선택하지 못한다.
둘은 서로에게서 어떤 해답을 얻는다기보다 함께 있을 때 막혀있던 숨을 비로소 내쉬게 된다.
그래서 이 사랑은 일탈(1950년대에 동성애다)이 아니라 생존에 가깝다.
영화 속 뉴욕은 늘 어둡다.
프레임은 자주 창문과 유리, 문 너머에서 인물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은 모두 고립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캐롤과 테레즈가 함께 있을 때만 화면에 빛이 들어온다.
여행길의 햇살, 호텔 방의 온기, 차창에 번지는 불빛들.
감독은 이 대비를 과장하지 않는다. 음악도 절제되어 있고, 감정은 꾹꾹 눌러 담는다.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은 소유도, 열정의 과시도 아니다.
그저 함께 있을 때 조금 덜 외로운 상태 혹은 함께 있는 그것이 전부다.
사실 내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도 영화 곳곳에서 보이는 주인공들의 눈빛이다.
케이트 블란쳇의 캐롤은 우아하고 단단하다. 흔들리지만 무너지지 않는다.
루니 마라의 테레즈는 조심스럽고 투명하다.
사랑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사랑 앞에서 그들을 막아서는 사회적 억압은 단지 배경으로 던져진다.
이야기는 끝내 사랑의 선택으로 돌아온다. 영화는 소위 영화적 기교를 통해 무엇을 남기려 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을 선택한 사람의 한 번의 결단이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원작 소설이 처음 나왔던 1950년대, 이 이야기는 파격이었다.
동성애를 다루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해피엔딩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그 결말 하나만으로도 오늘을 살아갈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 의미를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분명히 계승한다.
지금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은 조금 달라졌지만 사랑을 선택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영화는 말한다. 새로운 사랑을 만났다면 그 사랑을 붙잡으라고.
이 말은 로맨틱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이기도 하다.
캐롤은 여전히 여운이 길다.
며칠이 지나도, 연말이 지나도 문득 떠오르곤 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를 알아보고 있는가, 혹은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면, 혹은 그냥 조금 외로운 밤이라면,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꺼내도 좋겠다.
사랑은 설명되지 않아도 분명히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이미 우리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