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짱고영화

누구의 청춘에도 있었을 은중과 상연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by 짱고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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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을 통과한 사람들, 은중과 상연


나는 은중과 상연과 같은 시간대를 살아왔다.

01학번, 82년생(사실 나는 빠른 83). 국민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 배치고사를 쳤으며 역대급 물수능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IMF 여파로 선배들이 가던 제주도 대신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고, 졸업 이후에는 긴 취업난을 통과해야 했다.

지금은 선배와 꼰대의 경계 어딘가에 서 있고, 부모와 화려한 싱글 사이를 유영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은중과 상연>은 내가 지나온 시간의 얼굴이기도 하다.

선망하는 이에 대한 열등감으로 똘똘뭉친 모습. 나 또한 이들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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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보기를 허락하지 않는 드라마


은중과 상연은 넷플릭스에 한 번에 공개되었지만 이상하게도 몰아보기 어려운 작품이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여운이 세서 잠깐 그들의 속도에 나를 맞추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대 숏폼의 시대에 15부작 회당 약 1시간이라는 긴 호흡의 무얼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사건보다 감정을 믿고, 반전보다 축적을 택한 드라마는

간만에 잘만든 웰메이드 드라마가 되었다.


한동안 이 여운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다.



선망과 원망, 한 글자 차이의 관계


은중과 상연의 관계를 뭐라고 부를 수 있을가?

처음부터 두 사람은 서로를 동경했고, 그 동경은 자연스럽게 질투와 원망으로 이어졌다.

은중의 시선에서 상연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고, 상연의 시선에서 은중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가까이 있는 둘이었지만 둘은 서로의 일부만을 보았고,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그 뒷편은 각자의 결핍으로 채웠다.

그래서 가장 가까웠지만 동시에 가장 많이 오해한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난 은중이 열어보지 않은 상연이 쓴 이야기는 어떨지 제법 궁금했다. 물론 중간중간 상연의 회상이 그거이겠거니.. 하기도 했지만)


이 드라마가 섬세한 이유는 두 친구의 이러한 감정이 특정 사건 하나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심히 던진 말, 타이밍이 어긋난 선택, 지나치게 솔직했던 진심들이 켜켜이 쌓이며 관계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었다.

좋아해서 미워졌고 미워서 더 놓지 못했다는 말이 이 둘의 관계를 가장 정확히 설명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은중과 상연에게 사랑이란


두 사람의 삶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영화와 사진은 꽤 잘짜여진 플룻이다.

그것은 은중과 상연이 사랑을 바라보는 방식이자 서로를 이해하려 했던 언어에 가까워 보인다.

글을 쓰며 장면을 붙잡고, 카메라를 들고 빛을 기록한다.

암실에서 인화지를 물에 담그고, 서서히 떠오르는 이미지를 바라보며 그들은 무엇이 나올지 모를 그 무언가를 기다린다.


하지만 한 사람을 향한 은중과 상연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김상학이 어떻게 되었는지 드라마는 끝내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의 감정이 사람 사이에 어떤 흔적으로 남게 되는지를 드라마는 꽤 깊이 있게 비춘다.

그 흔적은 그들의 젊을 날을 살게하는 가장 행복한 감정이기도 하지만

서로를 쏘는 말이 되고, 무너뜨리는 선택이 되고, 뒤틀린 오해와 집착의 형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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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 도착한 화해와 작별


이야기의 끝에서 뜬금없이 다시 은중 앞에 나타난 상연은 조력 사망을 앞두고 스위스로 함께 가 달라는 부탁을 한다.

자칫 자극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소재에 드라마는 판단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빈부격차, 트렌스젠더 등 꽤 민감한 소재들을 다루고 있음에도 드라마는 한번도 누구의 편에 서지 않는다. 다만 이런 일이 있었다고 넌지시 알려줄 뿐)

상연의 그 선택이 옳은지 이기적인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보다 남겨져 있는 사람의 감정에 집중한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오래 지켜본다.

난 이 태도가 정말 좋았다.


은중이 상연의 손을 잡고 건네는 마지막 인사는 작별이라기보다 약속처럼 들린다.


상연의 부탁처럼 상연은 세상에 없지만 은중은 글을 통해 상연을 다시 이곳에 불러내 숨쉬게 할 것이다.

그렇게 친구는 이제는 헤어지지 않고 서로를 지탱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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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휴먼 드라마, 그리고 남는 얼굴


진짜 오랜만에 잘 만든 웰메이드 드라마다.

<은중과 상연>은 꽤 오래 남을 것 같다.

글을 쓰며 오래 연락하지 못한 친구의 얼굴도 미워서 더 잊히지 않는 몇 개의 이름도 함께 떠올랐다.


누구의 청춘에도 있었을 은중과 상연.

행여 연말 시간이 주어진다면 꼭 한번 정주행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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