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 찰리 맥커시 저

by 짱고아빠

행복하다


아이는 책을 좋아한다.(그런 것 같다)

그림책이 뭔지도 모르는 것 같은데 다만 잠에서 깨어나면 책장 앞에 서서 한 권을 꺼내 들고, 뒤뚱거리며 내 앞으로 온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펼친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사과가 있으면 ‘사과’라고 말해주고, 줄을 타는 서커스 단원이 있으면 ‘서커스 하는 아저씨를 보세요’라고 읽어준다.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아이는 이 과정을 참으로 즐거워한다. 박수를 치기도 하고 깔깔대며 웃기도 한다.

그걸 보고 문득 행복해진다.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린 내일 일을 모르지만 알아야 할 게 있다면 그건 지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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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존재, 하나의 마음


이 책에는 네 인물이 등장한다. 소년, 두더지, 여우, 말.

소년은 질문을 하고, 두더지는 케이크를 좋아하며, 여우는 말수가 적고(상처 때문에), 말은 크고 오래된 존재로서 조용히 이들을 지킨다.

작가 찰리 맥커시는 이 네 존재가 모두 우리 안에 있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불안해하는 나, 달콤한 위안에 기대는 나, 상처받아 침묵하는 나, 그리고 모든 것을 품으려 애쓰는 나.

이들은 서로를 고치지 않는다. 설득하지도 않는다.

다만 함께 걷고, 함께 멈추고, 함께 묻는다.


요즘 우리가 자주 잊어버리는 태도다.

우리는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있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이 여덟 살이든 여든 살이든 알 수 있고, 알아야 할 진리를 그림과 문장으로 보여준다.



함께 그리고 사랑하기


누군가는 이 책을 '위안을 넘어 희망으로 가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사실 최근에 나오는 많은 책들이 위로를 전한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그런데 이 책의 위로는 조금 다르다.

혼자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라고, 그리고 사랑하라고 말한다.


"우린 내일 일을 모르지만, 알아야 할 게 있다면 그건 지금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


그렇게 함께 사랑한다는 건

아이와 책을 읽던 그 아침처럼.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빛나는 순간들이라고 말한다.



불확실한 시대의 새로운 우화


짧게 읽은 책이 <곰돌이 푸>, <어린 왕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나란히 언급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단순하지만, 그 단순해서 오래 남는다.

가르치려는 대신 여운과 웃음을 남긴다.


언젠가 아이에게 꼭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은 나를 위해 이 책을 읽었다.

빨리 성장해야 한다는 조급함, 잘해야 한다는 강박, 그런 걸로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서점에 있는데 이제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전화가 온다.

엄마와 아이의 무당 탕탕거리는 소리,

꺄르르르 웃는 아이의 웃음소리,

스마트폰 넘어 아빠를 보며 "아빠 아빠" 하고 외치는 소리.

행복해졌다.


그렇다. 우리는 내일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돈을 많이 벌지도 혹은 생각지도 못할 어려움에 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여기 있다.


이 책은 이 당연한 사실을 아주 다정하게 알려준다.


지금, 당신의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읽는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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