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짱고영화

결국 말하지 못했던 마음에 대하여

넷플릭스 영화 우리의 열 번째 여름 리뷰

by 짱고아빠

'열 번째 여름'이라는 말의 온도


'열 번째 여름' 뭐랄까 듣기만 해도 싱그럽다.

우리는 지나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때는 영원히 곁에 있을 것만 같던 사람들, 친구들, 시간들, 장소들.

그렇게 습관처럼 함께였고, 그래서 더 쉽게 지나쳐 버린 마음들이 괜스레 돌아본다.


영화는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카풀을 하는 데서 시작된다.

다르고 다르고 또 다른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난다.

그리고 이 순간은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 아니라

왜 우리는 그렇게 오래, 말하지 못했는 가라를 설명하는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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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연인 사이


파피와 알렉스는 친구다.

오래된 친구, 너무 오래된 친구.

함께 여행을 떠나고,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순간에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차마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하나씩 남는다.


친구라는 관계는 안전하다.

선을 넘지 않아도 되고,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을 잃을까 봐 친구에 머무는 이들을 꽤 많이 알고 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본인의 이야기일지도)


그리고 영화는 이 선택이 얼마나 많은 여름을 소모하게 만드는지,

열 번의 여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여행, 웃음, 작은 다툼,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장면들.

(마흔 넘은 아재는 이 장면들이 사실 보기만 해도 좋았다.)



청춘은 뭐가 됐건 찬란하다


이 영화가 청춘에 대해 말하는 방식은 솔직하다.

청춘은 대담하지 않다.

불나방처럼 무작정 뛰어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계산하고, 너무 많이 상상하고,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낸다.


그렇게 열 번째 여름이 오기까지

두 사람은 수없이 많은 말 할 기회를 갖지만 그 모든 순간에,

그들은 늘 한 박자씩 늦는다.


영화 속 여름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여름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완벽하지 못한 마음을 숨기기에 딱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청춘의 여름은 늘 그랬다.

가장 빛나지만, 동시에 가장 겁이 많은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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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의 휴양지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


의외의 장면이 눈을 즐겁게 하는데

두 주인공이 떠나는 열 번의 여름 휴양지는 보는 것만으로 두 눈을 즐겁게 한다.

바르셀로나의 햇살 가득한 해변부터 뉴올리언스의 재지한 밤거리, 투스카니의 노을까지…

화면은 화사하고 싱그러운

햇살 가득한 해변, 음악이 흐르는 밤거리,

노을이 길게 늘어지는 언덕까지.


장면 하나하나가 여행 욕구를 불러일으키며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다.


하지만 이 풍경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의 로맨스를 더 공허하게 만든다.

풍경은 계속 바뀌는데 주인공들의 감정은 그만큼 움직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배경 속에

친구에서 연인으로 이어지는 어느 정도 실패하기 힘든 공식을 담아냈지만,

왜때문인지 우리가 따라가는 감정의 깊이는 그 풍경만큼 내려가지 못한다.


(누군가의 이 영화를 여행브이로그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원작에서 키워드처럼 쓰인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결국 우리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었지만,

영화는 여행지에서의 피상적인 낭만의 궤도를 끝내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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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나 다른 두 사람


결정적으로 두 사람의 다름은 '집'에서 기인한다.


파피에게 집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임시 거처다.

머무르기보다는

다음 목적지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그녀의 냉장고는 텅텅 비어있고 옷들은 언제든 캐리어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다.


반면 알렉스에게 집은

지켜야 할 삶의 기반이다.

사람도, 관계도, 일상도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자리다.


같은 여행을 하면서도

두 사람이 전혀 다른 풍경을 보고 있는 이유다.


누군가는 떠나야만 자신이 되는 사람이고,

누군가는 돌아가야만 비로소 자신이 되는 사람이다.


이 차이는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지만,

영화는 그 갈등을 끝까지 밀어붙이기 보다 적당히 타협하는 느낌이다.


이 부분이 영화적으로는 조금 아쉬웠다.



핑계대기 좋은 여행


영화는 도시와 도시를 옮겨 다니고, 풍경은 계속 바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의 관계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여행은 변화의 상징이지만

둘의 여행은 오히려 변화를 지연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떠나 있다는 이유로,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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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장 찬란했던 때는 언제인가요?


뭐 어쨌거나 이야기는 예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더 늦지 않아 다행이라 안도하며 괜히 나의 청춘을 떠올려보았다.


끝내 말하지 못했던 마음들,

괜히 말했다고 자책하며 보내던 여러 밤 둘,

지금이라면 더 성숙하게 다했을 것만 같은 나의 사람들.


만양 당신이 그 찬란한 청춘의 때를 지나고 있다면 대답하기 바란다.


지금 당신이 말하지 않고 있는 마음은 무엇인가.

혹시 그 마음을 ‘다음 여름’으로 미루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열 번째 여름이 오기 전에,

우리는 몇 번의 계절을 더 흘려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얼른 고백하시라.

당신의 이 여름이 이제는 찬란해질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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