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최고요 저
돌이켜보면 부러웠던 것, 갖고 싶었던 것은 멋진 집이나 비싼 가구가 아니라 ‘취향’이었습니다. 이 집은 좋다. 라는 느낌이 드는 공간에는 집주인과 닮은 무언가가 녹아 있었던 것 같아요. 취향이 집약된 ‘집’이라는 공간에 언뜻언뜻 보이던 탐나는 삶의 방식 같은 것. 취향이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는 것들 말이죠.(p.58)
작가님만큼은 아니지만, (사실 따라갈 수 없는 경지)나 역시 집에는 진심인 편이다. 대학에 진학하고 20년이 넘는 시간 자취를 했는데, 당시만 해도 단 하루도 주말에 집에 얌전히 있었던 적이 없다. 항상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영화를 보았다. 카페가 지루할 때면 공원에 가기도 했다. 거의 강박적으로 집 아닌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내가 스스로도 집돌이는 아닐 거라 믿었다. 집은 잠자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시간이 꽤 흘러 유현준 교수의 책을 보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사람은 방이 아니라 집에 살아야 한다. 현관을 열면 거실이 나와야 하는데 방이 나오면 싫은 공간이 된다. 창의력은 편한 공간에서 나오는데 원룸에 갇힌 우리 청춘들에게 이런 주거 형태는 좀 가혹하다는 이야기였디. 옳았다. 나는 그 즉시 거실과 방이 분리된 투룸으로 이사를 했다. 방을 침실, 거실을 식사와 작업 공간으로 바꾸고 나는 집에서 쉰다는 의미를 알았다. 기왕 이사하는 거 인테리어도 사방이 나무로 둘러싼 마치 통나무집 같은 느낌의 집을 정했다. 카우치가 있는 소파와 선반을 사서 조립했다. 완전히 카페를 끊지는 못했지만, 이때부터는 일요일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 거실에서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다. 턴테이블을 중고로 구해 처음으로 김광석의 LP를 들었다. 행복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조금 넓히기로 했다. 언젠가 결혼도 해야 하고 서른이 넘는 나이에 투룸을 전전하며 살 순 없었으니까. 지방이니 가능한 이야기기도 했다. 처음에는 32평 아파트를 중심으로 보았는데, 하나같이 그저 그런 뻔한 방이었다. 굳이 가보지 않아도 아는 뻔한 구조의 30년이 넘은 아파트들, 비싼 건 리모델링을 한 하얀색 몰딩, 조금 저렴한 건 리모델링 전의 체리색 몰딩. 지루해 포기할 즈음 마지막으로 한 집만 더 보자고 한다. 구옥을 완전히 리모델링해 깨끗하다는데 이번엔 총각 맘에 들 거라며. 차 한 대 겨우 지나가는 좁은 옛 골목을 들어서고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알았다. 여기 내 집이다.
좁은 마당이지만 나무 벽을 세워 옆집과의 거리를 두었다. 건물은 예전 구조를 그대로 사용했기에 천장이 높았다. 중문을 열면 거실과 긴 주방이 함께 연결되어 있다. 상부장이 없는 것도 완전 마음에 든다. 화이트 톤의 바닥은 대리석이며, 간간히 한두 벽에 색을 칠해 멋을 더했다. 여기에 원목으로 된 가구들을 배치했고, 100인치 빔프로젝트를 샀다. 이곳은 내 영화관과 게임방이 되었다. 방이 3개였는데 하나는 완전히 터서 거실을 확장했고, 여닫이를 설치해 확장하거나 분리할 수 있게 했다. 여기를 작업 공간으로 정하고 남은 방 중 큰 방은 침실, 작은 방은 옷방이 되었다. (큰방은 블랙톤이다) 구옥은 구조상 건물과 담장 사이에 빈공간이 있는데 이를 막아 하늘로 낸 창이 있는 다용도실을 만들었다. 이곳은 반을 잘라 한쪽은 고양이 화장실, 한쪽은 내 서재가 되었다. 조명은 따뜻한 톤으로 레일 조명과 집 전체를 둘러싸는 간접조명으로 되어있다. 밖으로 나와 마당에 캠핑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꼬마전구로 조명을 둘렀다. 매일 하늘을 마주하는 첫 번째 공간이자 밤이면 캠핑 갬성이 넘실대는 나만의 캠핑장이다. 여기 앉아있자면 가끔 담장을 넘어 다니는 길고양이들과 인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난 카페를 끊었다.
좋은 집, 내가 마음에 들고 사랑하는 집에 살고, 쉬는 경험은 어떻게 설명해도 모자라다. 나의 경우 수동적으로 단순히 이러한 집을 찾아 나서는 데서 그쳤지만, 고요님은 적극적으로 이러한 공간을 찾고 만들어 냈다. 책은 어떻게 이러한 공간을 구성하기로 마음먹었는지부터 셀프인테리어를 하는 법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알려준다. 어디서 인사이트를 얻는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페인트는 어떻게 펴바르고 조명은 어떻게 설치하는지까지. 고요님의이 들려주는 셀프인테리어도 즐거웠지만, 고요님이 직접 구성한 공간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요즘은 셀프인터레어 앱도 많고 그들이 꾸며놓은 공간도 훌륭하지만 아무래도 PPL 투성이의 사진보다 직접 사는 고요님의 집과 고양이가 더 정감 간다.
왜 우리는 모두 똑같은 집에 살아야 하냐고 유현준 교수가 물었다. 평수와 금액이 아니라 용도와 생김에 따라 집이 의미 지어질 순 없는지. 고요님이 이야기한 `취향`과도 맞물린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집을 이야기할 때 아파트냐 주택이냐, 몇 평이냐, 얼마냐(어디에 있느냐) 말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젊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버텨야 하는 공간, 이후에는 투자의 목적으로 우리의 집은 소구된다.
고요님은 조금 더 다른 집을 이야기한다. 취향을 더하고, 상상력을 더하면 우리는 어쩌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더 안락하게 쉴 수 있고, 더 따듯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HOUSE가 HOME이 되는 기적이 모두에게 더해지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집에 사는 경험. 아, 이거 진짜 좋은데.
좋아하는곳에살고있나요? / 최고요 저 / 휴머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