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 이기호 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라.
교회 오빠 출신으로 지나치기 힘든 제목이다.
그렇게 집어 든 책은 강민호 씨에 관한 내용이 전부는 아니고 7개의 단편이다. 교회 오빠 강민호의 이야기는 그 7편의 단편 중 하나다.
책을 읽는데 뭐랄까 웃긴데, 웃음이 목에 걸리고, 다 읽고 나면 쓸쓸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조금 부끄러웠다.
제목과 달리 조금 더 생각하자면 내용은 곧바로 우리에게 칼날을 겨눈다.
웃으며 읽기 시작했지만 책장을 덮을 때 나는 내 마음 어딘가에 살짝 멍이 든 걸 느꼈다.
최미진, 권순찬, 강민호, 김숙희, 한정희. 소설 속의 인물의 이름들은 하나같이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 이름을 가진 인물들은 모두 낯익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작가는 이 익숙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에게 묻는다.
이 인물들은 모두 상처를 안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 상처를 들키는 걸 더 부끄러워한다.
누가 봐도 억울한 상황인데 정작 본인이 미안해하고 그렇게 사라진다. 이들의 이름이 익숙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신도,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이기호는 질문을 남긴다. "왜 애꿎은 사람들이 서로를 해치게 될까?"
그 물음은 쉽게 흘려보낼 수 없고, 어쩌면 우리가 외면해온 진실일지 모른다. 그래서 이 소설은 유머를 품고 있지만 웃을 수 없고, 따뜻한 척하지만 서늘하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곧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환대’에 대한 문제 제기다. 우리는 누군가를 도왔다고, 이해했다고, 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모든 호의가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면? <한정희와 나>의 주인공은 자신이 품었다고 생각한 아이의 '뻔뻔함' 앞에 분노한다. 그 환대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던 셈이다.
나 역시 누군가를 돕는다고 말하면서, 내 기준에 맞는 반응만을 기대하지 않았던가?
"진실이 눈앞에 도착했을 때, 자네는 얼마나 뻔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가"
작가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조차 불가능한 시대, 윤리는 책으로 배울 수 없고 다만 ‘불가능함을 깨닫는 것’이 책의 역할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책을 읽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무너져도 뻔하지 않게 행동하고 싶은 마음, 그 가능성을 믿고 싶기 때문에.
웃음을 잃어버린 시대다. 슬픔과 고통이 일상이 된 시대에 유머는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유머를 품고 글을 쓴다. 다만 이 유머는 느리고, 뭉근하고, 어쩐지 서글프다.
웃기지만 아프고, 다정하지만 냉정한 이야기. 어쩌면 우리는 이런 소설을 통해 우리 삶을 돌아보게 된다.
당신도 이 질문을 받았으면 좋겠다.
정말로 무조건적인 환대는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