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패권 몰락의 징후와 세계 질서의 전환

야만 시대의 귀환 | 박노자 저

by 짱고아빠

1. 불안이 뉴스가 되는 시대


요즘 뉴스를 보자 하면 팩트가 아니라 감정이 남는 느낌이다. 관세 폭탄, 동맹 균열, 국제기구 탈퇴, 전쟁의 확산.

문명의 시대에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을 목도하고 그 일을 주고 하는 이들의 이야기에는 '화'만 남아있는 느낌이다.

설명은 길지만 그걸 바라보는 결론은 뭔가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야만시대의 귀환>은 비단 나만 느낀 게 아닐 것 같은 그 느낌을 정리해 주는 책이다.

미국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팍스 아메리카나는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됐는지, 트럼프주의는 단순한 일탈인지 아니면 구조적 귀결인지.

책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제1 패권국가인 미국을 파고들며 하나씩 설명해 준다.


한때 미국은 단지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달러를 기축통화로 세우고, 마셜 플랜으로 자본주의 진영을 재건하며, 군사와 금융, 소비를 하나의 순환 구조로 묶어낸 세계의 조정자였다.

저자는 설명한다. 그 거대한 구조를 유지하기에는 미국의 비용이 너무 컸다고. 그리고 패권을 영광이 아닌 비용으로 계산하는 이들이 등장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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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패권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세계 패권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패권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제국을 유지하는 비용, 전 세계에 군대를 배치하는 비용, 동맹을 설득하는 비용. 그 비용은 결국 미국 내부의 균열로 돌아왔다.

러스트벨트의 분노, 중산층의 붕괴, 금융 자본의 비대화,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대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을지 모를 트럼프 시대를 맞는 이들에게 트황시대는 이벤트가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 지점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는 향수이면서도 절박함이다.

문제는 그 절박함이 규범과 동맹을 벗어던지는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거다.

국제 질서의 관리자에서, 자국 이익만을 계산하는 열강으로의 후퇴.


저자는 이 변화를 제국 말기의 징후로 읽는다.



3.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그림자


저자는 트럼프에게서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그림자를 본다. 제국 유지 비용을 줄이려다 오히려 제국을 붕괴시킨 지도자들.

내부를 살리겠다는 선택이 외부 질서를 무너뜨리고, 그 균열이 결국 체제를 뒤흔드는 장면.


책은 말한다. 미국 패권의 몰락이 평화로운 다극 체제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오히려 힘의 논리만 남는 각축의 시대, ‘야만의 시대’가 열릴 수 있다고.

야만은 총성이 울리는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규범이 사라진 자리에서 시작된다.



4. 멀리서 오는 균열


책은 단순히 미국 비판서가 아니라 세계 구조의 전환을 읽는 지도일지도 모르겠다.

신자유주의의 끝, 일극 체제의 종언, 지정학의 귀환을 알려주는 지도.


사실 우리는 이미 그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금리, 환율, 에너지 가격, 전쟁 뉴스, 공급망 재편.

거대한 구조의 변화는 결국 우리의 일상으로 내려온다.

흔들리는 주식 차트로, 구조조정으로, 서두에서 이야기한 전쟁의 소식으로.


그래서 이 책은 머나먼 미국의 이야기를 하지만 이상하게도 개인적인 책으로 읽힌다.

세계 질서의 균열이 내 삶의 불안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5. 우리는 어떤 시대를 건너가고 있는가


<야만시대의 귀환>은 낙관적이지 않다. 하지만 무책임한 비관도 아니다.

이해하면 적어도 방향을 읽을 수는 있다. 그들과 같이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시대의 흐름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는 있다.


우리는 지금 전환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 제국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새로운 질서는 아직 윤곽을 드러내지 않았다.


행여 흔들리는 시대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있다면, 혹은 박노자라는 이름이 불편할지라도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건너가고 있는지. 꽤 괜찮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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