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냐고, 철학이 내게 물었다 | 임재성 저
“지금 내가 바라는 삶, 원하는 것, 이루고자 하는 그것은 진짜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부러움을 나의 목표로 착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지난해 <몽테뉴 사유의 힘>으로 한번 읽었던 임재성 작가의 책이다. 타인의 부러움을 나의 목표로 착각하지 않았냐는 작가의 질문은 그때도 꽤 오래 남았다. 남들의 시선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고, 박수의 크기에 따라 방향을 틀어왔던 시간들. 작가는 몽테뉴의 입을 빌어 물었다. 그것이 정말 네 마음이냐고.
이번 책도 그렇다. 30명의 철학자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멈춤’을 묻는다. 그는 챕터마다 철학자를 소개하는 것보다 그의 질문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려낸다. 전작이 몽테뉴를 통해 자기 관찰의 힘을 보여주었다면 <괜찮냐고, 철학이 내게 물었다>는 이 사유를 더 넓게 확장한다.
이 책은 불안과 의미, 고난과 관계, 그리고 성장이라는 다섯 개의 질문을 따라 걷는다. 1장에서 만나는 아우렐리우스와 세네카, 에픽테토스는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내어주지 말라고 말한다. 스피노자는 감정을 이해하는 일이 곧 자유로 가는 길이라 하고, 에피쿠로스는 작은 기쁨 속에서 평온을 찾는 법을 일러준다.(예전 도덕책에서 배운 그 에피쿠로스학파의 그 사람이 맞다) 여기서 철학은 거창한 어떤 것이 아니라 오늘을 버티는 기술이 된다.
2장에서는 빅터 프랭클이 인간이 고통 속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태도에 관해 일러주는데 어떤 것의 의미는 상황이 아니라 해석을 통해 달라질 수 있다고 그는 해석의 중요성을 우리게 말해준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능력이라 정의하며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느냐보다 어떻게 관계 맺느냐가 삶의 깊이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3장에서는 니체와 키르케고르, 사르트르가 등장해 불안에 관해 말한다. 불안은 나를 무너뜨리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자유롭다는 증거일 수 있고. 고난은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통로라고 말한다. 현재 실존주의를 가로지르는 이들의 시선은 낯설지만 묵직하다.
4장은 관계를 다룬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를 통해 오해의 본질을 드러내고, 라로슈푸코는 인간의 이기심을 날카롭게 비춘다. 한비자와 그라시안은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며 관계의 기술을 말하지만, 결국 책은 태도로 돌아온다. 관계를 바꾸기 전에 나의 시선을 먼저 돌아보라고.
5장에 이르면 질문은 더 근원으로 향한다. 아렌트는 생각하는 힘을 잃지 말라고 하고, 칸트는 스스로 판단하는 인간의 존엄을 말한다. 정약용과 파스칼은 삶을 깊이 성찰하는 태도를 통해 성장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생각하는 것. 그 말이 오래 남는다.
각 장의 끝에는 ‘오늘을 바꾸는 철학 한 줄’과 ‘나만의 깨달음 한 줄’이라는 칸이 있다. 이 질문들에 답하다 보면 어느덧 철학은 읽는 자리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어떤 것으로 바뀐다. 책을 읽는다면 질문이 다 그저그렇지라고 넘기지말고 꼭 한번 답을 구해보길 바란다.
“나는 왜 이 일에 이렇게 예민해졌는가.”
“지금의 불안은 무엇을 잃을까 봐 두려운 마음인가.”
“내가 원하는 성공은 정말 나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가.”
생각보다 답은 쉽지 않다. 오히려 질문이 더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질문들이 늘 불안해 하는 나를 위로했다.
확신이 없어도 괜찮다는 느낌. 당장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여유. 어쩌면 질문을 품고 사는 일은 미완의 상태를 견디는 일과 닮아 있었다.
철학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바꾸기 위한 거창한 도구라기 보다는 매일의 나를 점검하며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연습.
나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는 누구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는가. 나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책은 그리고 서른 명의 철학자들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생각하라고 권한다.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으로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 그 힘은 거창하지 않지만 꽤 오래 간다.
오늘의 불안을 없애지 못해도 괜찮다. 그 불안을 바라보고 그것과 마주 앉을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