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 이라하 저
코로나가 한창이었을 때였나.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박보영이 나온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꽤 마음에 남은 드라마였다.
당시에도 드라마 모두 공개 직후부터 “생각보다 담담하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정신질환 환자를 다른 사람들보다는 많이 만났다.
돌이켜 보면 그들은 여러 모양으로 내게 각인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가 좋고 감사했던 점은 정신질환을 결코 특이한 사건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지만 아직도 정신과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은 존재한다.
또한 조증, 거식증, 폭식증같이 자극적인 진단명은 가끔 신문 헤더를 장식하며 우리에게 괜한 거부감을 심어준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그 틈바구니에서 흔들리는 사람의 표정을 보여준다.
정신병동 역시 비극의 공간이 아니라 그럼에도 매일 아침이 찾아오는 공간이라는 점을 분명히 각인시킨다.
사실 웹툰이 원작으로 있는지는 몰랐다.
드라마의 좋았던 기억에 어느 날 원작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순식간에 세 권을 읽어버렸다.
원작은 실제 정신과 병동 간호사 출신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인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병원 내부는 꽤 디테일하다.
환자의 돌발 행동, 보호자의 분노, 의료진의 소진까지, 모든 장면이 날것으로 다가온다.
원작의 주인공 정시나(드라마에서는 정다운으로 바뀌었다) 간호사는 히어로가 아니다.
흔들리고, 상처받고, 환자에게 뺨을 맞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다음 날 마음을 다잡고 다시 출근한다.
이 정시나 간호사를 보며 여러 마음이 들었다.
그는 환우를 대할 때 언제나 진심이었고 사람에 대한 존엄을 지키는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야기는 환자를 치료의 대상이 아닌 관계의 주체로 그린다.
격리실의 소란도, 체중계 앞의 냉소도, 밤 편의점을 떠도는 발걸음도 모두가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었던 몸짓으로 읽힌다.
특이한 점은 웹툰은 등장인물들을 동물로 그린다.
그래서 더 귀엽고 애증 있게 다가오는 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드라마와 차별되는 점은 드라마에서 꽤 비중 있게 등장한 주변 인물들과 러브라인이 웹툰에는 없다.
이야기는 오롯이 병동 안의 시간에 집중한다.
드라마는 구조를 조금 바꿨다.
병동의 에피소드 중심이던 원작과 달리, 드라마는 정다운(원작의 정시나) 간호사의 사생활과 서사를 추가함으로 정다운 간호사의 삶을 다방면으로 보여주며 병동을 더 넓은 사회와 연결한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난 드라마의 선택이 좋았다.
사실 직장 내 소진, 우울, 불안, 번아웃 같은 문제들은 병원 안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누구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다.
드라마는 이런 문제들이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나와 나의 이웃에게도 있을 수 있는 문제임을 알려준다.
많은 책이나 드라마가 우울증을 다루며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 인식들을 지우고 있는데 사실 이 드라마가 그 역할을 제일 제대로 했다고 생각한다.
실제 이 글을 쓰기 위해 찾은 리뷰에서도 "나도 병원에 가볼 용기가 생겼다"는 고백이 꽤 많았다.
이 작품이 남긴 가장 큰 변화는 아마 이 용기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현실성, 공감, 그리고 절제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이야기는 아주 영리하게 풀어낸다.
정신질환을 극적 장치로 소비하지 않고, 인물의 일상 속에 배치했으며 울리기 위해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고, 보여주되 판단하지 않았다.
또 하나 의학 드라마와 달랐던 점은 의료인과 간호사 역시 히어로가 아니라 지치고 상처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의료인도 환자가 될 수 있고, 그 병을 치료하면 다시 현장에 돌아올 수 있다.
이 울림은 생각보다 컸다. 누구든 치료받을 수 있고 받아야 한다.
숨기기 보다 드러내 도움을 요청하고 기꺼이 그 요청에 응답해야 하며, 이 상황이 끝난 후에 우리는 그를 사람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괜찮은가."
그랬다. 우리가 읽은 정시나 혹은 정다운 간호사의 이야기는 결국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온다.
아마 당신의 내일도 아침과 함께 시작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제목은 묘하게 희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