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도 없이 일합니다> 지은채 저
내 자신의 일은 항상 지겨워 죽겠다. 남의 일이 더 좋다. _오스카 와일드
무슨 일 하세요? 치과 기공사요. 아 그 치과에서 일하는? 아니 그건 치위생사구요. 전 블라블라
무슨 일 하세요? 사회복지사요. 아 그럼 공무원이세요? 아니 그건 사회복지 공무원이구요 . 전 블라블라
글의 시작부터 비슷한 경험이 많아서 킥킥 대며 책장을 넘겼다. 그러고 보면 딴엔 전문직이라지만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전문직이 꽤 많다. 우리네 부모님은 늘 우리에게 변호사, 의사 같은 전문직이 되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또 다른 의미의 전문직인 기공사,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처음에는 뭔가 죄송스럽기도 했는데 언젠가부터 내 인생을 내가 사는데 뭐라는 마음이 더 크다. 분명히 이야기하자면 나는 의사가 못된 게 아니라 안된 거다.(쩝;)
책은 치과 기공사의 이야기다. 작가님은 치과 기공사라는 직업을 보통 잘 모른다는 데서 이야기를 시작하시는데 하지만 난 그 직업을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지난 몇 년간의 지난한 교정과 수술 그리고 지금도 입에 있는 교정기를 차고 있는데, 5년간 거의 매주 병원을 들락거리다 보니 매주 내 입에 끼워지는 보철들이 의사, 간호사 선생님의 작품이 아니라 외주에 의한 작업임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렇지. `치과도 외주를 주겠지`란 어쩌면 간단하고도 명료한 이치.
아마 자기 직업이 아닌 이상 타 직업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아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치과 기공사의 하루는 더욱 그랬다. 제대로 된 간판 하나 없는 건물에 츄리닝 차림으로 출근해 하루종일 남의 이빨이 될 모형들을 만든다. 사실 중요하고 정교한 작업이지만 중요도에 비해 근무환경이나 복지는 턱없이 부족하다. 복지만 부족한 게 아니라 인력도 부족해서 빨간 날은 늘 검정색으로 덧칠되기 일쑤고, 누가 휴가라도 갈라치면 지옥문이 열린다. 그럴듯한 명함도 없고, 저 이 회사 다녀요 하는 브랜드도 없다. 참다참다 못해 사직서를 던지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결국 그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때론 악에 받쳐서, 때론 조금 더 단단해져서.
사정은 조금 다르다지만 우리 모두 어떠한 쳇바퀴를 돌리며 오늘을 살고 있다. 그 쳇바퀴가 지겹고 답답해 가끔 다른 바퀴로 갈아타기도 하고, 거꾸로 쳇바퀴를 돌려보기도 한다. 그러다 아예 그 판에서 도망치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다시 오늘을 살아간다. 그게 누군가 말하는 대단한 가치를 위해서든 당장 내일 먹을 양식을 위해서든 같다. 우리는 오늘을 산다. 실패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하고 또 가끔 잘 해내기도 하지만 하여튼 우리는 오늘을 산다. 기공사님의 이 이야기는 이 오늘을 사는 우리를 위한 위로다. 지랄맞고 한심하고 답답한 오늘을 사는 우리게 건네는 위로.
딴에 다이어트 한답시고 저녁 맥주를 멀리하고 있는데 아 오늘 같은 날은 맥주 한잔 하고 자야 할 것 같다.
기공사님을 위해 cheers!. 또 수고한 나의 오늘을 위해 cheers!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명함도 없이 일합니다 / 지은채 저 / 마누스 /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