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달리기> 김상민 저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나도 러너다. 풀코스는커녕 하프도 한번 완주한 적 없지만(사실 도전하려는 해에 코로나가 왔다) ‘무슨 운동 하세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어렵지 않게 ‘달리기해요’라고 대답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몸에 운동이 없다. 운동회 때 100m 달리기의 꼴등은 나였고, 웬만큼 잘 달리는 여자 친구들보다도 기록이 쳐졌다. 러닝이 안되다 보니 발로하는 건 다 못했다. 축구는 물론이고, 족구, 컵차기 등 하여튼 발로하는 건 모조리 피했다. 그나마 키와 덩치가 있어 힘으로 때울 수 있는 운동은 곧잘 배웠다. 체육 시간은 축구와 농구로 양분됐는데, 슬럼덩크와 농구대잔치 등 어마어마한 농구붐에 의해 1진이 농구, 2진이 축구로 갈려져 중고딩시절에는 엉망인 내 운동이 그렇게 티가 나진 않았다.
어쨌거나 달리기는 태초부터 안되는 운동이었는데, 이런 나도 딱 한 번 달리기로 칭찬받은 적이 있었다. 얼차려로 운동장 10바퀴를 뛰는 벌칙이었는데 5, 6바퀴쯤 지나자 반의 거의 모든 아이가 떨어져 나갔다. 딱 두 명. 나와 육상부였던 반장만 10바퀴를 오롯이 뛰었고(물론 반장이 들어오고도 한 바퀴를 쳐져 골인) `니가?`라고 휘둥그런 표정으로 체육 선생님은 내 손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삼십 대 중반을 넘어서고 더는 운동하지 않고는 못 버틸 나이가 되었다. 뭐라도 하라는 진단에 테니스, 농구, 배드민턴 등 생활체육 중 여러 구기종목을 고민하다 문득 그날의 달리기가 떠올렸다. 나조차 상상 못 했던 10바퀴 완주의 기억은 꽤 강렬했나 보다.
이 나이에 새로 운동을 시작한들 어딜 가나 민폐일 것이 뻔했고, 되도록 누구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는 운동이 좋을 것 같았다.
- 빨리 달리진 못해도 오래 달릴 순 있지 않을까?
그렇게 어느 날 저녁, 목이 늘어난 후줄근한 티셔츠, 트레이닝 바지, 언젠가 헬스장에서 신겠다고 사놓고 거의 신지 않은 러닝화를 신고 나는 처음으로 출발선에 섰다. 간간히 SNS에서 부러워하던 나이키런 어플을 켜고, 나는 생애 첫 달리기를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이다.
처음 목표는 10km 완주였다. 나도 대회에서 메달을 받아보고 싶다는 물욕이 나를 끌었고, 한번 해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뒤를 밀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달리기. 혼자 처음에는 1km, 한 달 뒤엔 2km 또 한 달 뒤엔 3km를 뛰었다. 정말 매일 쉬지도 않고 꾸준히 공원에 나섰고, 1km만 뛰어도 죽을 것 같던 숨은 3km를 넘어가도 꽤 안정적으로 되었다. 앞만 보느라 보이지 않던 풍경과 새소리도 가끔 들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정확히 달리기 시작하고 6개월 만에 나는 첫 번째 대회에 출전해 ‘사람이 어떻게 10km를 뛰어’ 했던 그 일을 해내고 만다.
동네별로 다양한 러닝크루가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함께 뛰어본 건 서울로 발령 난 이후 한강이었다. 그것도 사실 회사동호회가 아니었음 엄두도 못 냈을 거다. 크루에 참가하는 이들은 너나할거 없이 가면 다 알아서 해주니 걱정말라 했는데 진짜로 그랬다. 준비운동 하는 법, 효과적으로 호흡하는 법. 혼자였으면 차마 상상도 못 했을 꿀팁을 크루에서 배웠다. 혼자 뛰는 것도 좋지만 함께 뛰니 더 좋았다. 누가 그랬던가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나처럼 운동에 젬병인 초보자의 경우는 함께 가는 게 훨씬훨씬 좋다.
그래도 책 리뷰인데, 책 이야기는 안 하고 내 이야기로 피드를 채웠다. 사실 책도 이런 이야기다. 물론 전 세계 마라톤을 정복하고, 새로운 도전 중이신 저자의 이야기는 나보다 더 재미있고 디테일하지만 러너로의 달리기에 대한 애정은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저자의 표현처럼 우리는 매일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얼마나 빨리 갈지, 혹 얼마나 멀리 갈지 누구나 계획을 하지만 결과가 늘 우리의 마음 같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매일 출발선에 선 수만큼 우리는 성장한다. 순환의 고리를 그려가며 끊임없이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어쩌면 이 노력 중에 선물처럼 우리에게 ‘러너스 하이’가 찾아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보통 사람인지라 그렇게 러닝에 열심을 내진 못한다. 여름엔 덥다고, 겨울엔 춥다고, 일에 찌든 날은 피곤하다고 매일 모든 곳에서 뛰지 않을 이유를 찾고 이따금 이 유혹을 이기기도 그냥 주저앉기도 한다. 코로나로 인한 마스크 착용을 핑계로 꽤 긴 런태기를 겪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 나이키앱에서 1,000km를 달리면 부여하는 파란 딱지를 받았다. 단 1km도 못 뛰던 내가 1,000km를 뛰었다. 마음이 희한한지라 이런 작은 보상이 새로 신발 끈을 묶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다시 길로 나선다. 분명 어제와 같은 코스를 돌겠지만, 어제와는 다른 길일 것이다. 남들보다 빠르진 못해도 천천히 나의 페이스로, 나는 아무튼 달린다.
아무튼, 달리기 / 김상민 저 / 위고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