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부르는 이름> 임경선 저
길지 않은 소설임에도, 어떻게 생각하면 주변에 있는 보통 이야기임에도 마음이 먹먹했다. 가을이다. 책은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에 관한 이야기. 아니 언젠가 찬란했던 우리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어쩌면 스포)
주인공 수진은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혁범을 존경하고 따르지만, 혁범은 다른 이와 결혼한다. 그 후 수진은 서울을 떠났다 혁범이 이혼 후 독립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혁범을 찾아온다. 예전처럼 둘은 함께 일하고 때론 자는 사이를 유지하지만 혁범에게는 늘 우선순위인 딸이 있었고, 수진은 점차 외로워져 간다. 이때 수진의 옆에 수진만을 바라보는 한솔이 나타나고, 수진은 늘 바쁜 혁범과 한솔 사이를 오가며 지낸다. 사랑하는 이와 사랑받는 이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수진. 수진이 자신에게서 멀어져 감을 느낀 혁범은 한솔의 존재를 알게 되고 수진에게 이별을 고한다. 하지만 우연히 혁범이 이혼 후 근근한 삶을 버티고 있음을 알게 된 수진은 결국 혁범에게 향한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혁범과 결혼한 수진은 언젠가 혁범에게만 있었던 어떤 `빛`이 더는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된다. 함께 나이 들어가며 특별함이 평범함으로 바뀐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한솔의 눈에만 보였던 자신의 `빛`도 그렇게 조금씩 사그라들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수진은 새벽에 어둔 방을 보며 멍하니 있거나 슬픈 것들을 볼 때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일이 늘었다. 하지만 아들과 함께 있을 때 그는 스스로 `빛`남을 알 수 있었다. 수진은 가끔 놀이터에서 풀이 죽어 돌아오는 아들을 보며 언젠가 같은 눈으로 자신 앞에 서 있던 한솔을 떠올린다. 아들을 꼭 안아줄 때 그 빛은 오롯이 아들에게 전해지는 것 같다. 아들은 다시 살아난다. 언젠가 한솔이 그랬던 것처럼, 혁범 앞에 서 있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언제 우리는 벅차게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까? 아마 누군가는 매일 사랑을 표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평생을 살며 한번을 쉽게 사랑한다 말하지 못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한 번쯤 그런 사람은 있을 것이다. 늘 나보다 너를 위했던 사람, 나보다 너가 마음이 아프거나 상처 입을 것을 걱정하던 사람, 너가 나의 마음에 보답해 주지 못한다고 해도 기꺼이 나를 먼저 내어주던 사람, 나의 가혹함을 덜어내고 너의 불완전을 기꺼이 끌어안았던 사람. 가장 순수하게 사랑했던 젊은 날,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 가지고 있었던 모든 이에게 이 책은 묘한 울림이 된다. 위로가 된다.
가만히 부르는 이름. 다시 보니 제목이 참 좋다. 평생을 살며 그렇게 가만히 부르게 되는 이름이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사랑한 기억이든 사랑받은 기억이든. 그 기억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오늘 사랑한다고 말하는 걸 미루지 말자.
가만히 부르는 이름, 임경선, 한겨례출판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