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어둠> 율리아 에브너 저
언제부턴가 반으로 갈라진 나라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물론 나도 예전엔 어느 한쪽에 붙어 끊임없이 지지 않는 진영논리를 SNS에 풀어내고, 말이 비슷한 이들을 팔로워하고 그 진영 안에서만 살던 적도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워낙에 싫증을 잘 내는 타입이라, 반복되는 이야기에서 한 발짝만 걸어 나오니 내가 속해있던 텐트가 보였고 반대쪽 텐트가 보였다. 양 텐트 모두 부지런히 매일 무언가를 생산해 내고 있었다. 더 끔찍한 것은 바깥의 소리에 눈과 귀를 막은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만 끊임없이 리트윗(혹은 리그램)하며 갇혀있었다. 뉴스를 보자면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극좌와 극우. 세상의 양극에 포지셔닝한 이들이 이전에는 그저 골칫덩어리였다면 기술, SNS의 발전과 함께 그들은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다. 자세히 집계되진 않지만 이미 우리가 우려하는 수준 이상의 세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 책은 이런 극단주의자들의 모임에 들어간 저자의 기록이다. 저자는 다섯 개의 부캐를 만들어 지하디스트, 기독교 근본주의자, 백인 민족주의자, 음모론자, 여성 혐오주의자들의 모임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들 극단주의 운동이 어떻게 세상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사회의 전복을 모의하는지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본다. 언뜻 생각하기에 이 한심한 짓거리에 누가 참여할까 싶지만 그들이 생산하는 혐오 콘텐츠의 규모는 생각보다 거대했고, 그 규모는 낙담할 만큼 많았다.
1936년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복사 기술의 발명이 파시즘의 발흥에 일조했으며, 이런 기술이 미디어와 예술, 정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랬다. 혐오에 기반한 극단주의는 오늘날 기술의 발전을 통해 날개를 달았고, 자본 아래 더 깊이깊이 숨어들었고 이 익명성에 기반한 테러리즘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슬람 국가(IS)와 같이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낼 때 인류가 이룩한 인권과 자유의 기치가 어디까지 훼손되는지 우리는 눈으로 보았다.
책은 모집, 사회화,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킹, 동원, 공격, 우리의 미래 7가지 쳅터로 나누어 극단주의자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들의 전략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적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읽다 보면 그들의 규모와 깊이에 새삼 놀라게 되는 지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몇 번이나 '그만!'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저자는 마지막 쳅터에서 극단주의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이야기와 우리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10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테러에 맞서는 기술의 대비는 당연한 것일진대, 저자는 꽤 길게 양극화에 맞서는 정책, 혐오에 맞서는 도움, 분노에 맞서는 예술 등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며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회복을 주문한다.
극단주의 운동의 공통점은 '우리 대 그들'이라는 사고방식이라고 한다. 이를 깨부수기 위해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인간의 정체성의 회복과 함께 사랑, 신뢰, 우정 같은 본연의 가치를 깨울 수 있는 방법을 더 고민해달라는 점이다.
결국 극단주의의 시작은 우리가 잃어버린 이들로부터 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쉽게 낙오자라 부르는 이들 혹은 인종, 종교, 재산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 스스로 세상과 분리되어 갇혀버린 이들로부터 극단주의가 시작되었다면, 이들을 다시 사회 속으로 편입시키는 것은 그들보다 강한 무기가 아니라 어쩌면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가장 간단하고 빠른 길일지도 모르겠다.
번역서라 조금 어렵지만 극단주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 추천.
한낮의 어둠 / 율리아 에브너 저 / 한겨레출판사 /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