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짱고책방

Don't just do it!

<그냥 하지 말라> 송길영 저

by 짱고아빠

최근 읽은 책 중에 가장 밑줄이 많은 책이다. 10년 전 빅데이터라는 생소한 단어를 가지고 나타났을 때도 그랬는데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송길영 대표의 이야기는 인사이트가 세다. 시시각각 데이터가 쌓이는 만큼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그가 몇 년을 주기로 쓴 책들은 다 다른 이야기를 한다. 개인적으로 <트렌드> 어쩌고 하는 책 보다 송길영 대표의 책을 일 년에 한 번씩 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빼곡한 밑줄에서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운 인사이트를 몇 가지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준비되지 못한 서글픈 개인에 대하여


우리는 주로 혼자 살고, 점점 작아지는 집단을 경험한다. 당장 주변을 둘러봐도 개인적으로는 미혼이며, 속한 조직은 점점 작아져 결국 자신과 조직을 꼭 맞추는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나아가 자신의 경제를 속한 회사에 일임하기보다 수익의 파이프 라인을 늘려가는 이들이 많다.

한 회사의 정규직이 되는 것이 중요한 시대에 다 경력직을 뽑으면 신입은 경력은 어디서 쌓느냐고 하소연한다지만, 이 우스개는 이미 현실이다. 경제위기 이후 거의 모든 기업의 공채는 사라지고 채용은 경력직 직무로 대체되었다.

회사는 이제 일을 가르쳐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일을 진짜로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좋든 싫든, 욕하든 드러눕든 개인의 선택이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준비돼야 한다. 그럼 경력을 어디서 쌓느냐고? 모두가 유튜버나 인스타그래머가 될 수는 없지만 유튜버나 인스타그래머는 분명 기업에게 매력적인 레퍼런스를 제공해 줄 수 있다.



2. 회사에 관하여


12년 차 중간관리자 레벨이다. 그룹웨어가 도입되며 좀 이해하기 힘든 이들이 나타났는데 다들 나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참조 메일로 남기는 것이다. 심지어 금방 구두로 합의가 끝난 내용 메일로 남긴다. 꼰대 입장에서 처음에는 곱게 보이지 않았다. 일단 내 메일함이 참조 메일로 가득 차는 게 싫었고,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려는 행위로 비쳤고, 보고를 이런 식으로 퉁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해 가끔 괘씸하단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실제로 회사에서는 김사원이 작성한 보고서가 이 과장에게 가서 3일을 서랍에 잠자고 있다가,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박 팀장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일이 일어난다. 박 팀장은 최초 보고서가 작성된 이후 3일이란 시간이 지난 뒤에 보고서를 보게 되는 게 이 기록을 추척하면 보고 내용과 상관없이 이 과장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이렇게 단계별로 증거를 남기면 무임승차가 불가능해진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공정은 이런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


거의 모든 회사가 상사는 '젊은 직원들은 왜 일을 안 하는지 고민'이고, 젊은 직원들은 '상사가 무능해서 싫다'라고 한단다. 이 갈등은 코로나로 촉발된 재택근무로 인해 극에 달했는데, 자신의 과업을 감독하고 지도 편달하는 매니저로 설정한 상사들은 재택근무에 과업 달성이 어려워지자 멘붕이 왔다. 직원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자신의 역할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이에 반해 젊은 직원들은 본인이 가장 효율적인 공간에서 업무를 하니 효율이 최대로 나기 시작했다.(집의 기능도 MZ세대에는 쉼과 업무를 겸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무엇보다 집에는 '김사원, 이 컴퓨터 좀 봐달라'는 부장이 없다. 이러니 상사와 사원의 재택근무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다. 이건 젊은이들이 놀아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어쨌든 공포에 사로잡힌 상사들은 사원들을 다시 회사로 불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사원이 아니라 사직서였다.


천재가 짠 코드가 수억 명에게 혜택을 주고, 한 명이 만든 에러가 엄청난 피해를 낳는 시대다. 얼마 전 코드 오류 하나로 전국의 KT 전산망이 멈추는 사태를 우리는 목도했다. 생산성이 균일해서 대충 손 빠른 정도가 나아 보이는 세상은 이미 끝났다. 이미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부터 재택근무에 대한 수용성은 높이져 있고, 소위 똘똘한 개인이 만들어내는 임팩트, 그리고 그의 요구에 회사는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에서 소위 상사라 불리는 이들은 어떠한 역할을 부여받고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사무실 제일 마지막 자리에 앉아 매니징 한답시고 주식창 보던 시대는 끝났다.



3. 내 일에 대하여


내용 중 제법 의외의 이야기가 업무를 에이전시에 맡기지 말고 직접 해보라는 것이다. 요는 큰 그림은 본인이 직접 그리라는 건데, 그는 결국 담당자가 결국 일의 A-Z까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머지않아 루틴한 일은 에이전시가 아니라 자동화될 것이기에, 지금부터는 에이전시 잘 다루는 이가 아니라 방향을 알고 제시하는 이가 주도할 것이라 말한다. 이를 위해서 대행 쓰는 버릇을 들이지 말고 직접 좀 챙기라는 거다. 사실 이건 에이전시 없는 세상에서 일을 직접 해본 지금의 XY세대에게 강점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일을 하기 위한 데이터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예전에는 지금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과거를 보았지만 지금은 새로운 방법과 데이터를 현행화 할 수 있기에 과거에만 매달리면 안 된다는 점이다. 오늘을 보고, 지금으로부터 미래를 봐야 더 현명해질 수 있는 것, 방대한 데이터의 산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골라내고, 팩트체크가 가능한 데이터 리터러시를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으로 꼽는다.

하나 더, 그는 일단 행하고 기록하라고 말한다. 충실하다면 반드시 발견될 것이기에.


4. 관계에 대해


코로나로 비대면의 시대에 사는 것 같지만 아니다. 우리는 선택적 대면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싫은 이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싫음의 척도가 되는 것은 예의, 공감, 진정성의 문제다.


소위 꼰대라고 불리는 이들의 언행을 살펴보면 한 마디로 축약된다. 나이가 많아서, 직위가 높아서 혹은 여러 이유로 '내가 너의 일상생활을 충고하고 제한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언니 같아서, 아들 같아서, 어떤 이유든 누구도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해선 안된다. 무모하고 무례하다. 심지어 이건 가족이라도 마찬가지다.


듀얼 모니터가 보편화된 사회지만, 처음 회사에 두 개의 모니터를 요구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니가 무슨 일을 그렇게 한다고'였다. 물론 들어보면 책상이 좁아, 다른 직원과의 형평성 등등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돌아온 답을 곱씹고 곱씹어 보면 첫째, 그 상사는 내게 무례했고, 둘째, 내가 일하는 방식을 1도 공감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한 번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일해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저 별난 직원의 하나로 치부되었고, 몇 년 후 선배가 자리에 듀얼 모니터를 올리고서야 나도 슬그머니 모니터 하나를 더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례는 내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간혹 타 팀 직원과 커피 한잔 하다 보면 자리를 비우는 일이 종종 있다. 작게는 이러한 일탈이 허용되는 문화를 살아온 이들과, 정해진 GPS를 벗어났을 때 바로 부모에게 알람이 가는 세상에서 살아온 이들은 일탈을 받아들이는 기준이 달랐고 '뭐 그런 걸로'라고 말하는 내가 이른바 감수성 없는 이가 된다. 한 세대의 규칙 준수, 공정의 감수성을 다른 세대를 살아온 이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진정성이다. 진정성의 정확한 실체는 모르지만 진정성이 없다는 건 직관적으로 알 수 있으며, 진정성이 뭐든 간에 사람들은 그것을 원한다고 한다. 이 직관의 영역에 속하는 진성성을 우리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조금 더 고민하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훨씬 오래 살고 젊게 산다. 그리고 데이터는 참 많은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 데이터의 세계가 참 재밌다.


그냥 하지 말라 / 송길영 저 / 북스톤 / 2021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