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짱고책방

슬픔이 지나간 자리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최현우 저

by 짱고아빠

시간은 상실로 비어버린 마음의 공간을 덮어 감추기도 하지만, 어떤 상실은 끝내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구멍이 나기도 한다. 마치 도로 위의 싱크홀처럼, 행복의 문제도 불행의 문제도 아니다. 사람이 타고 태어나는 성격의 건강함도 문제가 아니다. 슬픔을 이해받지 못하는 자들은 세상을 사납게 살아간다. 슬픔은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자국을 남기기도 하니까. 다만, 사나운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그 빈자리에 누군가와 함께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이기도 한다. 조용히 누군가와 앉아서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나눠 먹을 수 있는 그 자리가.

p.47


책을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문장을 씹고 또 씹었다. 씹을수록 글이 달았다. 작가님의 글이 세상에 어떤 위로를 건넬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던 편집자님의 이야기가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오래도록 읽으며 어떤 문장에서는 위로가, 또 어떤 문단에서는 용기가 났다. 그렇게 글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을 울렁이게 했다.


나도 마음의 구멍이 있었다. 잘 덮어 놓았고, 때론 그 위에 나무를 덧대고 못질을 해서 나조차도 구멍이 없는 줄 알고 살았다. 하지만 글을 읽으며 마음을 녹이는 문장에, 인지하지 못했던 마음의 밑천이 드러나기도 했다. 다행히도 시인은 이것은 행복이나 불행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나와 당신의 우여곡절이 달랐던 것이고 그렇게 나와 당신의 아름다움이 다를 뿐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시인은 당신의 무릎을 기꺼이 상처 입은 누군가의 옆에 함께 꿇어주는 것으로 사랑하겠다고, 그렇게 함께하겠다고 말한다. 문득 내가 드러낸 바닥 앞에서 나와 함께 무릎 꿇어 주었던 이들에 대해 생각했다. 스쳐 지나가는 몇몇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있었다. 그들은 나를 살게 했고 죽을 것만 같았던 내 불행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해프닝에 그치게 해주었다.


그들 중에는 나의 고양이도 포함된다. 까만 밤 내 품을 비집고 들어와 작은 숨소리와 함께 나를 바라보는 내 고양이의 눈빛에 나 또한 몇 번이고 구원을 경험했는지 모른다. 모두가 나를 모른다 하더라도 내 고양이는 여전히 너는 내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심연의 어둠 속에서도 단 하나의 존재. 나의 고양이는 나를 바라봐 주었다. 또렷이 그리고 따듯하게. 고양이를 안고 엉엉 울던 밤도 떠올랐다. 이 책은 참 멀리도 나를 데려가 주었다.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 최현우 저 / 한겨레출판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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