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당근거래 이야기1
당근에 물건을 팔 때 늘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 첫째는 얼마에 팔아야 손해를 보지 않을까이며, 둘째는 누구에게 팔아야 기분 좋게 팔 수 있는가이다. 전자는 사이트 검색하면 시세가 대충 나오나 서치가 크게 어렵지 않으나 후자는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좀 어렵다. 많지는 않지만 실제 거래 후 괜히 찜찜하고 기분이 나빴던 경우도 제법 되긴 했다. 또 쓸데없이 잔정이 많아 내 물건이었던 무엇이 좋은 이에게 가서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늘 있다. 어쨌든.
사정상 빨리 팔아버려야 했기에 시세보다 조금 낮게 물건을 올렸고 당연하게도 바로 채팅이 쏟아졌다. 그중 제일 먼저 온 채팅이
-예약합니다. 염창동.
-저가 노인이다 보니 도저히 살 수가 없네요.
-손가락이 느려서요 ㅋㅋ
라고 천천히, 하지만 또렷하게 연달아온 챗이었다. 어쩌지... 하고 있는데 뒤이어 지금 당장 오겠다는 채팅이 쏟아졌다. 일단 그래도 먼저 온 이에게 우선권이 있기에 물었다.
-안녕하세요 언제 거래 가능하실까요? 먼저 오시는 분께 거래하려고요
-대방역으로 가지러 가나요?
-(그럼 내가 갈까요....)네 가지러 오셔야 합니다
-지금은 그렇게 내일 출근시간 지나 1o시쯤 어떨까요? 어두워 운전이 어려워서요.
불안했다. 하.. 팔지 말까.
-내일 저도 출근을 해야 해서요.
-시간과 편한 장소를 주세요. 여의도도 괜찮습니다.
아니 내가 여의도까지 저걸 어떻게 들고 가냐고!!! 정말 팔지 말까...
-매일 저녁시간만 가능하세요? 오늘은 지금 김장 준비하느라 그래서요. 내일 저녁 이 시간에 가께요. 밤에 되도록 안움직이려하지만요. 저는 집에 있는 사람이니까. 장소나 편한 시간 주시면 맞춰 갑니다.
-(김장준비라니... 안팔아야지) 그런데 밤운전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괜히 죄송하네요.
-다니긴 해요...ㅋㅋㅋ 너무 걱정안하셔도...
좀 젠틀하게 거절하고 싶었는데. 망한 것 같았다.
-그럼 내일 10시반 괜찮으세요? 너무 늦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10시반요? 아뇨 늦으면 차가 오히려 작어서 나아요....
-내일 제가 10시쯤 떠날 때 묹 :드리께요. 그때 전번 주세요.~~.
안 팔기도 틀린 것 같다. 그런데 전번이라니. 그걸 또 달라니. 뒤숭숭하게 다음날이 밝았다. 그리고 10시가 좀 넘은 시간.
-안녕하세요...? 지금 출발했는데 전번 좀 주세요. 운전하면서 문자가 힘들어서요...
-네 000-000-0000입니다.
모르겠다. 그냥 오시라. 정든 전자레인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 10시 30분. 칼같이 모닝 한대가 부웅부웅 눈앞에 나타났다. 분명 저 차 같은데.. 모닝은 갈길을 잃고 최대한 카메라에 걸리지 않는 각도에 서려했다. (아니 이 시간에는 괜찮아요) 그리고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저기 지금 도착했는데 여기 공터가 없어요"
"혹시 저 모닝이신가요? 거기 잠깐 세우시면 돼요 괜찮아요"
"아 네"
끽끼익. 전화가 끊기지도 않았는데 몇 번의 부릉거림과 동시에 시동이 툭 꺼지고 문이 열렸다. 호호 아줌마. 딱 그 느낌의 어르신이 나를 보며 환하게 다가왔다.
"추운데 오래 기다리셨죠? 호호호호"
"아 네, 여기 있습니다 이거 어디 시..ㄷ"
"아휴 우리 집에 부산에서 올라온 총각이 저가 사면 될 텐데 통 안 해서요, 이런 거까지 하는 거 아나 몰라"
"세입자 사주시는 거예요??"
"네 그래서 비싼 건 못 사요. 보시다시피 제가 이런 거 안 익숙해서 호호호호"
"??"
여차저차 뒷자리에 전자레인지 실어주고는 대강 듣자니 부산에서 올라온 세입자 총각이 있는데 여태껏 살던 사람들은 필요한 거 본인이 구입해서 잘 살았는데 이 녀석은 통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우중충하게 살더란다. 하도 마음이 쓰여서 집에 놓을 전자레인지 찾다가 당근에서 딱 싼 게 걸렸던 것 같고, 그래서 급하게 예약!!이라는 선챗을 날렸단다. 나도 두 개의 집을 빌려 사는 세입자 입장에서 뭐 이런 집주인이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차에서 주섬주섬 돈을 꺼내는데, 봉투가 보였다. 봉투? 당근 거래 수십 번에 봉투가 나오긴 처음이었다. 단돈 만원인데 봉투라니. 아주머니는 연신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이시고는 예의 그 모닝을 타고 나타났던 모습 그대로 달달 거리면서 눈앞에서 사라졌다. 사실 좀 멍했다.
월급이며 모든 거래가 카드와 계좌이체로 대체된 세대. 그래서 지갑 같은 거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 세상에 나는 살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는 지금도 봉투에 곱게 현금을 담아 전해주고 있다. 마음이다. 고맙다는 마음. 물건 거래가 고마울게 뭐 있겠냐만은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것을 싸게 잘 전해주어 고맙다'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을 전해주고는, 손때 묻은 내 마음을 가지고 가셨다. 당근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이건 또 새로웠다. 무언가에 마음을 담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혹 편리함에 치여 마음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나. 전화기 넘어 글자 몇 개로 누군가를 함부로 재단하고 평가하지는 않았나.
서울에 처음 올라와 합정역에서 당근을 통해 가지고 온 전자레인지가 이제 새 주인을 만났다. 아마도 잘 지낼 것 같다. 그래서 그 밤 참 좋았다. 괜히 실실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