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저
그래서 그 둘은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거의 모든 동화의 엔딩이다. 그렇게 사랑한 남녀는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4가족을 이룬다. 아빠는 퇴근 후 뉴스를 보고, 역시 퇴근한 엄마는 저녁을 준비한다. 학교가 파한 후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학원을 3개쯤 뺑뺑이 돈 아들딸은 그제야 게임을 하나 했지만, 식탁에서 떨어진 엄마의 불호령에 아빠 눈치만 본다. 아빠는 딴청을 부리며 화장실로 들어가 버린다. 식사 도중 할머니에게서 주말에 다녀가라는 전화가 오고 엄마와 아빠는 티브이를 켜둔 채로 아내 안방으로 들어간다. 큰소리가 나고 잠깐 맞서는 것 같았던 아빠는 음쓰 버릴 때 입는 외투를 아무렇게나 걸치곤 집을 나선다. 갈 곳이라고는 10년이 좀 지난 똥차 운전석이 전부겠지만, 우리 모두는 아빠가 거기에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모른체한다. 그곳에서 아빠는 좋아하는 노래도 듣고, 유튜브도 보며 한참을 있는다. 엄마는 대충 식탁을 치우곤 이모에게 전화를 건다. 아이들은 눈치껏 제방으로 들어가 게임을 시작한다.
지금도 결혼정보회사 광고는 '결혼=행복'이라며 열일하지만 결혼의 골이 행복이 아니라는 건 대한민국에서 30을 넘은 성인남녀쯤 되면 이제 제발 좀 알아야 한다. 통계청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주위에 결혼을 결행한 이웃들 중 진짜 행복한 가정과 행복한 척하는 가정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아! 그렇다고 결혼이 불행을 초래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혼은 그냥 결혼이라는 점이다. 임경선 작가의 <평범한 결혼생활>은 이 그 지극히 평범한 결혼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짧은 책에 실린 50개의 에세이는 20년간 이 결혼생활을 경험한 작가의 이야기다. 글의 말미에도 강조하듯 누구를 가르치거나 깨우치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두 남녀가 어떻게 사랑했고 결혼을 결정하고 결혼 이후 또 어떻게 맞춰가고 어떻게 함께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결혼하면 이렇게 좋다는 누군가의 이야기와 같이 결혼하면 그냥 그렇다는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다. 그리고 나는 전자보다 이 이야기에 백번 공감하는 편이다.
우리는 결혼에 대해 너무 많은 환상과 기대(이는 타인의 기대 포함)를 가지고 살아간다. 결혼과 동시에 삶이 바뀌는 건 맞지만 그것이 언제나 결혼론자들의 그것처럼 옳은 방향만은 아니다. 결혼 생활은 꽤 많은 좋은 점이 있지만 그것만큼의 지랄도 함께 가지고 온다. 그리고 이건 취사선택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가령 식사의 문제만 해도 그러하다. 나의 경우 오히려 처가 식구들이 '밥은 잘 얻어먹는지' 걱정해 주시곤 하는데, 감사하지만 식사 준비는 아내의 일이 아니고 배고픈 사람의 일이라고 조심스레 얘기한다. 물론 이내 돌아오는 건 '얼마나 잡혀살길래' 하는 안타까운 눈치이긴 하다. 아이의 경우도 그렇다. 결혼하면 아이는 당연히 생긴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고, 이걸 너무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이들도 있다. 빨리 가지지 않으면 나중에 체력이 부치고 어쩌고 하는. 걱정이라는 건 알지만 내 입장에서는 지극히 무례하고 또 무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결혼이 나쁜 것만도 아니다. 언제고 내 편이 되어줄 누군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더 든든한 일이다. 서투를지언정 함께 내일 뭐 할지 고민할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건 꽤 괜찮은 일이기도 하다. 합법적 섹스메이트의 탄생도 뭐 썩 나쁘진 않지만 이 부분은 기대하지 않은 것이 좋다. 그리고 책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나 역시 한때 결혼에 대한 환상을 품은 적이 있었고, 이후에 있어질 모든 문제는 '사랑'으로 극복 가능하다는 '신앙'을 가진 적이 있었다.(이건 정말이지 신앙의 문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이내 그 환상을 현실로 가져오는 이들은 살면서 손에 꼽을 만큼 적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가지 이유를 들어 결혼의 불리함과 비합리성을 설득시킨다 해도, 망할 줄 알면서도 뛰어드는 어떤 맹목적인 마음에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귀한 찰나를 본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혜로운 사람이 강을 건널 방법을 생각하는 동안 미친 사람은 이미 강을 건너가 있다. 미쳐 있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민폐일지 몰라도 본인들만큼은 사무치게 행복하다. 훗날 그 어떤 대가를 치른다 하더라도. (p.63)
평범한 결혼생활 / 임경선 저 / 토스토 출판 /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