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숙 씨 딸내미 참 잘 키우셨네요> 강혜빈 저
처음 책을 받던 날 작가님께 사인을 부탁했다. '어머니 이름이 뭐예요?' '아 저.. 어머니는 제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어요 하하하...'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작가님은 어머니 이름 빼고 '잘 키운 아들 장민혁 차장님께'라고 메모해 주셨다.
바쁘기도 하고 읽어야 할 책들에 밀리기도 했지만, 사실 책을 함부로 잡지 못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이제는 20년이나 흘러버린 그날이 또 기억날까 봐서이다. 사실 얼마 전 <여섯 밤의 애도>라는 책을 읽으며 엄마 생각이 많았다. 꼬맹이 시절 일어났던 그 일에 난 평생을 무던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지나버린 일은 돌이킬 수 없고,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책은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난 엄마와 그 죽음을 지근거리에서 지켜준 딸의 이야기다. 엄마란 우리 모두에게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존재다. 생각만 해도 좋고, 한없이 따듯하고 세상 모두가 내게 등 돌려도 내 편일 단 한 사람. 그 사람을 지구상에서 떠나보내는 기록이 쉬울 리 있을까. 인쇄된 글에서 작가님의 눈물이 묻어 나오기도 했고, 어느 부분에서는 우리 엄마가 생각나 나도 한참을 울기도 했다.
뼛속까지 경상도 남자인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교통사고였고 엄마는 일주일을 그렇게 식물인간으로 있다 세상을 떠났다. 몇 가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엄마의 생일이 일주일 정도 남았었고 책을 좋아했던 엄마의 생일선물로 나는 소설집 한 권을 샀고 그걸 엄마의 관에 함께 묻었다. 또 사고 전날 엄마가 그렇게 먹고 가라던 맛탕을 그냥 두고 나왔던 일이다. 나는 지금도 고구마 맛탕을 찾아 먹지 않는다.
엄마가 죽던 날, 내 세상이 한번 무너졌던 그날. 엄마 영정 앞에서 '나 잘 살 거라고' 주먹 앙쥐고 식식거렸던 기억도 난다. 담임선생님이 반 친구들이 모은 꼬깃한 천 원짜리가 가득 담긴 봉투를 전할 때도 아버지는 통곡을 했지만 나는 그저 이를 악물었다.
상을 치르고 학교에 돌아가니 나와 별로 말도 섞지 않던 친구가 그랬다. '와 니 존나 불쌍하네' 물론 악의 없는 이야기였고, 딴엔 걱정이란 걸 알았지만 다시는 누구도 내게 그런 말을 내뱉지 못하게 싸웠다. 이후 내 앞에서 엄마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는 친구들은 없었다.
그렇게 엄마 없는 20년이 흘렀다. 아빠는 밤마다 닳아버린 결혼식 테이프를 몇 번이고 돌려보고 술을 마셨고, 동생은 매번 엄마 산소를 다녔다. 어쩌다 교회에 다녀버리게 된 나는 엄마 없는 삶에 가장 잘 적응한 사람처럼 보였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상 중에 누가 했던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냥 살았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뒤에 알았다. 그 말은 틀렸다.
이젠 몇 장 남지 않은 엄마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나는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애도의 시간을 놓쳐버린 나는 여전히 그 시간을 되돌리지 못하고 피하고만 있다. 이젠 어떻게 그 시간을 되돌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무책임한 말에 나의 삶은 죽음과 이어지지 못하고 이제껏 죽음을 맴돌고만 있다. 그래서 책의 끝자락 '잃어버릴 때마다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작가님의 이야기에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내 지난 20년은 대체 어디서 보상받아야 할까.
어렵지만 지금부터라도 20년 전 떠나보낸 엄마를 다시 내 삶으로 모셔오려 한다. 엄마의 따듯함을 다시 기억해 내고 그 따듯함으로 세상을 다시 살아보려 한다.
최점자씨 아들내미 잘 키우셨네요. 언젠가 만날지 모르는 엄마에게 꼭 이 말을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시간을 기억하게 해준 작가님께 감사를.
이필숙 씨 딸내미 참 잘 키우셨네요 / 강혜빈 저 / 책과나무 /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