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이어령, 김지수 저
스승이란 무엇인가. 시인 이성복은 스승은 생사를 건네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생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스승이라고. ‘죽음의 강을 건널 때 겁먹고 급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이쪽으로 바지만 걷고 오라’고.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몽테뉴가 그랬고,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모리 교수가 그랬다. 멘토나 롤 모델, 레퍼런스가 아니라 정확하게 호명할 수 있는 스승이 곁에 있다면, 우리는 애틋하게 묻고 답하며 이 불가해한 생을 좀 덜 외롭게 건널 수 있지 않을까.(P.6)
글쎄, 그럴 거는 같았지만 이 책을 검색하면 쏟아지는 칭찬과 호평에 대해 사실 좀 의아했다. 물론 16개의 챕터에서 쏟아지는 선생의 깊이는 감히 내가 감히 평가할 수 없지만 짧은 지면에 그 지혜를 담자니 책 한 권으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주제들이 더러 있었고, 이는 이 책에서 선생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질문을 너무 크게 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뭔가 조금 더, 조금 더 깊었으면 하는 아쉬움일지도 모르겠다.
대가와 마주 앉아 한 시간 인터뷰하는 것의 인사이트도 대단하지만, 한 학기 그에게 수업을 듣는 것은 그 깊이와 농도에서 꽤 차이가 크다. 내가 느끼기에 책은 전자에 속하는 것 같은데 어쩌면 유튜브를 1.2배속으로 보는 시대의 사람들에게 어쩌면 이런 책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메멘토 모리’ 네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앞둔 선생이 들려주는 지혜에 읽는 내도록 마음이 먹먹했다. 그는 영혼, 외로움, 지적 갈망, 사랑, 돈, 고통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우리가 견지해야 할 삶의 태도에 대해 들려주는데 그는 이를 작은 이야기로 비유한다.
이 이야기가 마치 내게는 이렇게 읽혔다. 삶은 크게는 태어나고 죽는 이야기. 그리고 그 안의 소소한 작은 이야기들이 존재하는데 그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들은 서로 반대되거나 우선하지 않는다. 작은 이야기들이 즐거움이 되고, 이 작은 이야기들은 결국 죽음이라는 큰 이야기 앞에 귀결되는데 작은 이야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러서도 안되고, 또 큰 이야기 앞에서 너무 작은 이야기에 집착해서도 안된다.
마흔에 접어들며 나의 젊은 날을 돌아볼 때 너무 작은 이야기에 마치 내 인생이 끝날 것처럼 굴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이는 오십의 내가 마흔의 나를 돌아 볼 때도 그럴 것 같다. 설사 오늘 내가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건 내 인생의 실패가 아니다. 반대로 오늘 작은 성공을 거두었다 할지라도 그 성공 또한 내 인생의 성공은 아닐지 모른다. 다만 중요한 건 오늘 내가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미루지 말 것.
이어령 선생을 위한 인터뷰어의 마음이 전해져서 마음 한편 이 뭉클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질문이 남았다. 나는 이렇게나 존경하는 스승이 있는가. 또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스승이고 선배일 수 있는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이어령, 김지수 저 / 2021 / 열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