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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Mar 04. 2022

이 레고는 제가 아끼던 물건이예요

나의 당근거래 이야기 2

당근에서 갖고 싶던 레고를 만났다. 아이언맨 헐크버스터. 갖고 싶었지만 꽤 나가는 가격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지 어연 몇년째. 이게 단돈 만원이라니 일단 질러야 했다. 그렇게 문자를 보냈다.

네? 물건 주인이 등교라구요???

왜 내 당근은 늘 이럴까. 일단 물건이 급하니 시간을 맞추기로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제안.



참고로 판매자는 총4종의 레고를 각각 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는데 3번(앤트맨과 와스프)는 이미 판매되었고,

내가 원한 헐크버스터(1번)만 구매하면 7천원, 남은 세개를 다 가져가면 1만원에 준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당근마켓에 올라온 1 헐크버스터 / 2 쥬라기 공원 / 3 기타 등등


안받을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고 나는 덥썩 물었다. 

그리고 거래일이 찾아왔다.






레고주인은 학생일테고 부모님이 대리 거래를 해주시는 모양인데 뭐 이렇게까지,, 싶기도 했다.

크게 대수롭지 않게 약속장소로 향했고 꽤 많이 당황했다.


커다란 종이가방에 레고를 각각 나눠들고 있는 장애인 친구.

사회복지사로 장애인을 매일 만나던 처지에 사실 그 친구가 어떠한 것은 내게 크게 중요치 않았다.

다만 헐크버스터가 중국 짝퉁이라는 점이 살짝 거슬리면서 어쩐지 싸더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친구는 살짝 겁먹은 듯한 얼굴로 애써 웃어 보이며 준비한 말을 더듬더듬 그러나 빠르게 이야기했다.


이거 다 자기가 아끼는 레고라는 거. 그리고 이 바닐라커피 두개는 자기 돈으로 산거라는거.

솔직히 속은 좀 상했는데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이거 짝퉁이잖아!! 할 수도 없는 노릇에 지갑에서 만원 한장을 꺼내 건넸다.


미션을 성공한 얼굴. 환하게 웃는 친구를 뒤로하고 거래완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집에서 받은 레고들을 다시 꺼냈다.



사진에 없던 공룡도, 자기 돈으로 샀다던 바닐라라떼 두 봉도 예쁘게 들어있었다.

문득 스스로 거래를 이루어 냈을 때 지은, 긴장이 풀리던 순간의 아이의 표정이 떠올랐다. 자신이 아끼던 레고의 새 주인을 위해 제 돈을 커피 두봉을 사 봉투에 넣었을 그의 정성이 새삼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조립하지도 않았고, 박스도 없고, 설명서도 없지만, 이 먼지 쌓인 레고들이 사랑스러워졌다.





친구는 오늘 있었던 일을 아빠에게 어떻게 자랑했을까.

아빠는 그런 아이를 얼마나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을까.


안쓰는 물건, 누군가에겐 그렇게 사소하고 볼품없는 것일지라도 그것에는 그것을 거쳐간 이들의 이야기가(나의 이야기까지) 녹아있다.

이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좋아서 자꾸만 중고거래를 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사랑을 보태 그 물건들을 사용하게 된다.


공장에서 나온 새물건은 좋고 깨끗하지만, 글쎄. 누군가의 손떄 묻은 것들이 이제 더 좋아지는 걸 보니 나도 늙었나보다.

고맙다 친구야. 잘 예쁘게 오래도록 보관할게.



* 참 그리고 쥬라기공원은 레고정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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