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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Mar 09. 2022

말하지 못한 내 사랑

월간 <쓰는 사람> 3월_첫사랑

구미 인동중학교 2학년 6반 김선희. 내가 기억하는 나의 공식적인 첫사랑의 이름이다. 난 김선희와 사귀지 못했다. 아니 그 애의 눈을 보고 좋아한다고도 차마 말하지 못했다.  말하지 못한 내 사랑. 그래서 더 애틋하고, 더 기억나고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그런 첫사랑.


4월이었다. 봄. 벚꽃이 흐드러지던 날이었고, 작은 학교라 전교생을 친구 삼아 다니던 내 앞에 처음 보는 아이가 나타났다. 돌이켜보면 꽤 미화된 기억일지도 모르지만 그 아이가 나타난 순간만큼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친구는 말타기를 함께하던 내 (여자) 친구들과는 달리 하얀 얼굴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반머리로 길게 늘어뜨려 묶었다. 처음 만나는 자리 어색한 표정을 차마 풀지 못한 김선희는 천천히 걸었고 가끔이지만 참 예쁘게 웃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 나는 요동쳤고, 세상은 멈췄다. 


첫사랑.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그 마음을 누군가에게 들킬까 부끄러워하고, 또 그 마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본 사람은 안다. 나이가 들고 잴 것이 많아진 어느 날 만나게 된 사람과는 조금 다른, 어떠한 욕심도 섞이지 않은 순도 100%의 마음. 

좋아한다. 내가 널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 누군가를 마주할 때의 그 떨림을. 


김선희. 서울에서 전학 왔다는, 이름마저 예쁜 아이를 확인한 날부터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와 가까워지려 했다. 사람을 시켜 집이 어디인지, 어떤 동아리에 가입했는지, 집에서 학교로 가는 동선은 어떠하며, 누구와 친하고 어느 학원에 다니고 있는지도 알아냈다. QT모임을 한다고 해서 심지어 교회도 다녔다.(하나님은, 참, 다양하게 일하신다)


그렇게 김선희에게 나를 소개했고 우리는 사소한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집이 멀어 학교에서 밖에 만날 수 없던 나는 하루에 한 번씩 삐삐 메시지를 남겼고, 아주 가끔이었지만 그 아이에게 답신이 올 날은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듣고 또 듣고. 학교 가는 게 즐거웠고, 쉬는 시간 괜히 6반 앞을 왔다 갔다 했다. 한 번이라도 더 마주칠까 봐.


도대체 왜 여길 자꾸 오냐며 구박하던 (여자) 친구들은 곧 그 이유를 알아냈다. 아마 김선희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상상력이 풍부했던 ENFP 소년은 그의 사랑을 매듭짓기 위한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야 만다.


'쟤 내가 찍었으니까 건드리지 마'


그랬다. 과거의 나를 찾아가 멱살이라도 잡아야 할 것만 같은 이 대사는 실제로 15세 장민혁의 입에서 나왔다. 김선희가 좋다는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가 거슬리기도 했다. 덩치는 크고 마음은 작았던 나는 그렇게 김선희의 마음을 모두에게 선포해 버렸다. 온 학교가 우리의 사랑을 응원하길 바랬고, 또 그럴 줄 알았다. 왜 영화 같은 데서 보면 꽃다발을 든 남자가 무리에 쌓여하는 고백은 언제나 성공하곤 했으니까. 


그렇게 디데이를 기다리던 어느 날 체육대회였다. 김선희가 달릴 차례가 왔고, 갑자기 우리 반 아이들을 필두로 전교생이 트랙에 둘러앉아 김선희와 내 이름을 번갈아 연호하기 시작했다. 선생님들도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하다 이내 킥킥댔다. 역사는 준비 없이 찾아온다고 했던가. 좀 당황하다 이내 득의양양해진 나는 개선장군 마냥 운동장에 나왔다. 


그런데 내가 마주한 건 어쩔 줄 몰라하며 부끄럽게 고백을 받아주는 김선희가 아니라 실망으로 가득 찬 김선희였다. 슬퍼 보였다. 이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좋게 해석해 실망이지 원망이다. 경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보는 모습. 


그것이 끝이었다. 지독하게 멍청했던 나의 첫사랑은 가장 나쁜 모습으로 끝났다. 돌이킬 수 없었다. 나는 그날 이후 한 번도 김선희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그 얼굴이 떠올라 밤마다 이불 킥을 했다. 최대한 김선희가 없는 곳으로 피해 다녔고, 한동안 매점도 가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졸업을 했다. 졸업식 날 어색하게 마주하고 안녕이라 하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남녀공학을 다녔던 김선희는 방송반을 하고, 그 안에서 누군가와 사귀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친구를 통해 들었다. 번호를 전해받기는 했지만 한 번도 연락하지 못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친구가 수능을 친 어느 날 친구가 김선희을 만나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싫다 했지만 끌려나갔고, 그렇게 어른이 된 나는 처음으로 김선희와 단둘이 카페에 마주 앉았다. 


-그때 왜 그랬어?

-미안해.


그날 꽤 많은 시간을 변명과 나의 어리숙함과 나의 멍청함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기억나는 대화는 딱 저거다. 어느 대학에 진학했는지도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나는 거라곤 지독하게 맛없던 커피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던 김선희와 달리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못한 나. 그리고 엉거주춤하게 일어서면 발견한 김선희의 하얀 발목과 나이키 운동화.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김선희를 만나지 못했다.


물론 김선희를 찾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모임>과 <아이러브스쿨>이 유행하던 시절 최선을 다해 그를 찾았고, 모두가 <미니홈피>를 가지고 있던 시절에도 그랬다. 안타깝게도 82년생 김선희는 너무 많았고 아마도 그 친구는 이러한 문명의 이기에서 조금은 멀어져 있는 것 같았다.(거짓말이 아니라 난 일주일의 시간을 들여 500개가 넘는 김선희의 미니홈피를 헤매었다)


그렇게 또 2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혹은 벚꽃이 가득한 어느 날이면 지금도 그날의 김선희가 기억난다. 살아가다 한 번이라도 김선희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만약 그 기회가 온다면 이번엔 정말 진심을 담아 사과하고 싶다. 미안했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넌 나의 첫사랑. 네 덕에 장민혁의 학창 시절이 정말이지 풍성하고 행복했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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