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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Mar 15. 2022

나는 다이어리를 훔쳤다

이렇게 어른이 된다.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이.

복지관에 근무하던 시절, 주로 아동 프로그램을 맡아 운영했는데   제일 손이 많이 가는 프로그램이 '아동방과  교실'이었다. 아이들도 많고 선생님도 많고 하여튼 시끌벅적했는데 어느  A 게임기가 사라졌다. A 울고불고 난리가 났고, 마침 B 슬그머니 사라졌다. CCTV 돌려보니 사라진 B 손에 문제의 그것이 들려있는  보였고, 나는 조용히 자리를 피해 B 집으로 갔다. B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더니 이내 울어버렸다. 놀란 토끼눈을  B 할머니를 피해 놀이터 벤치에 둘이 앉았다. 한참을 울던 아이는 죄송하다고  게임기너무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오늘만 가지고 놀다 내일 돌려줄 거라고도 했다. 그래도  잘못한 거라고 꿀밤을  때리고 가만히 어깨를 안아주던 찰나, 어릴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일 나의 도둑질이 떠올랐다.


중학교 1학년 때, 문제집을 사러 간 문방구였다. 정말이지 다른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문제집을 사러 갔고 여느 때처럼 계산할 차례를 기다리며 이것저것 구경하던 중에 지난주에 친구가 자랑하던 딱 그 다이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미치코 런던'의 이름을 붙인 4,500원짜리 비닐 다이어리. 갖고 싶었다. 지금이야 커피 한잔 값이지만 까까머리 중학생에게 4,500원은 한 달치 용돈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 자리에 서서 그 예쁜 다이어리를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계산하느라 정신없어 보이는 주인아저씨의 손은 돈을 받지만 눈은 내게 꽂혀 있는 것 같았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두근두근두근. 점점 박동이 빨라져 터져 버릴 것 같은 순간. 딱 한 순간이었다. 나는 교복 안주머니로 그것을 밀어 넣었고 들고 있던 문제집을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채 문방구를 빠져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태어나 그렇게 뛰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뛰었다. 등 뒤에서 "야!"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볼 수 없었다. 그냥 정말 앞만 보고 달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밥 먹으라는 아빠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방문을 잠갔다. 그제야 교복 안주머니에서 나온 다이어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또 심장이 뛰었다.

결국 난 그 다이어리를 비닐 채 책상 맨 구석으로 밀어 넣었고, 그 다이어리는 수능을 치고 책상을 정리하던 중 다시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난 그것을 쓰레기통에 구겨 넣었다. 그때의 감정이 다시 떠올랐고, 다시는 이 감정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별일 없이 대학에 갔고 취업을 했다. 그리고 20년의 시간이 지났고 용기를 내 다시 그 문방구를 찾았다. 예전보다 꽤 규모가 커졌고 지금은 일하는 직원도 몇 명 되는 것 같았다. 그때 그 아저씨는 여기 사장님이 되었을까, 아니면 다른 일을 하고 계실까. 20년 전 다이어리를 집어 든 그 장소에서 괜히 쭈뼛거리며 볼펜 한 자루를 집었다. 계산을 하려는데 웬 중년 아저씨가 계산대에 서 있다.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오백 원이라고 이야기하며 아저씨는 내가 내민 만원을 받아 들더니 요즘은 현금 내는 사람이 없다며 반가워했다. 거스름돈을 챙기며 옛이야기를 이어 나가려는 아저씨를 피해 나는 슬그머니 그때처럼 문방구를 빠져나왔다. 이번엔 " 저기 거스름돈!"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체 하고 뛰었다. 그렇게 뛸 생각은 없었는데 뛰다 보니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공터에 앉았다.


만원을 받아 들던 아저씨의 손을 떠올렸다. 환하게 웃으며 옛이야기를 시작하던 이의 시간을 보았다. 서로 말은 못 했지만 분명 20년 전 그때의 내 시간도 그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부끄러웠다. 꽤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다짐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 일은, 그래서 소중한 사람을 속상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겠노라고. 또 한편으로 안심이 되기도 했다. 어떤 실수와 잘못을 저질러도 다시 예전처럼 믿어주고 한결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어른이, 언제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내게도 있는 것 같았으니까.


시간이 지나 B도 자라 대학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복지관에 인사도 오고 그랬다는데 하필 그 순간에 나는 없었다. 그 녀석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바라기는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으로, 또 누군가의 실수를 가만히 덮어줄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주면 좋겠다. '네 잘못이잖아'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세상에서,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되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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