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함’s 의미부여
의미부여.
이 단어를 크게 보면 쓸쓸하고 애처롭게 들린다.
요즘 20대, 내 주변 사람들을 포함해 이 단어는 자신의 기대와 달리 퇴짜를 맞았을 때,
자신이 겪은 사랑을 허탈해하며 스스로를 조롱할 때 쓰인다.
"괜한 의미부여였어, 애초에 무엇을 한 적 없고, 어떠한 관계도 아니었는데 말이지."
보통은 짝사랑에 한정해 이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다.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쉽게 사랑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한 번 빠지면 깊게 빠졌다.
상대의 반응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좋아했던 상대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였다.
의미가 늘어날수록 마음은 점점 부풀었고, 그렇게 붙인 의미들은 각기 따로따로 둥실 떠다녔다.
그 말들과 행동을 하나로 엮어 상대의 마음의 판단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레고 블록으로 본다면, 각각의 블록을 맞춰 전체의 모양을 확인해야 했지만,
나는 오히려 하나하나의 블록을 선물처럼 포장하기 바빴다.
지금도 나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 익숙하다. 다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
나의 의미부여는 범위가 이전보다 훨씬 넓다.
단순히 사랑의 표현이나 관심의 표시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괜한 의미부여보다는,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하고 확신하려는 그런 의미부여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가능성이 유추되는 일에 더 큰 확신을 두기보다는,
일상적인 것과 미세한 것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면 나는 의미부여를 한다.)
긍정이라 여겨지는 일에는 더한 긍정으로 만들기보다는,
그 안에 깃든 허상을 낮추기 위해 완화의 의미를 부여한다.
반대로 부정으로 느껴지는 상황과 사건에는,
이러한 일이 더 나은 나, 더 단단한 회복을 만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를테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일은 물론,
연애 속에서 ‘왜 나한테 이래' 하고 다투게 되는 순간에도,
이 일이 우리 둘에게 분명 깨달음과 관계의 윤활제가 되어줄 거라 믿기에,
나는 그렇게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의미부여는 감정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돕는다.
물론 연애에서는 그런 도움이 있음에도 감정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이러한 의미부여는 감정과 실재의 균형을 맞추는 가로등이 되어준다.
* 앞으로 등장할 펭귄 씨는 남자친구의(현남편) 별명을 의미합니다. 펭귄을 닮아 그렇게 이름 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