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살이 돋으려면

첫 번째 잎 — 기꺼이, 재개발

by 주나함

펭귄 씨는 사귀기 전부터 워낙 친절과 센스가 전제된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상황을 영리하게 파악하고,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데 능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보면 좋은 쪽으로 약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와의 관계에서는 달랐다. 일대일 관계로 들어서니 분명 여전히 친절하고 센스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분명 존재했다. 예상 외로 악의는 없었지만 단순한 면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의외였던 건,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이었다. 표현하는 것 또한 몹시 쑥스러워했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는 일도 잦았다. 이를테면 내가 애정 표현을 하면, 그는 묵묵부답이거나 못 들은 척 넘어가곤 했다. 무안했고, 민망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부끄러워서 그렇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 상황을 마주하면 답답하고 화가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나 여지가 언제나 악의나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펭귄 씨는 자신이 이성 관계에 있어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고, 일적인 관계 외에 긴밀한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고, 잘못된 점을 알려주면 반복되는 일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늘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그럴 때마다 종종 “나 믿죠?”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는 그렇게 묻지 말고, 믿을 만한 행동을 하라고 몇 번이고 외치곤 했다. 나 역시 사람인지라, 오해가 생길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그와 내가 아는 그를 하나하나 떼어내어 유추하고 생각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해되지 않는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던 중, 다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생겼다. 마음을 잘 정돈하려 해도 쉽지 않았다. 펭귄 씨는 하루하루 안정감을 누리며 일에도 집중하며 지냈다. 반면 나는 내 삶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괴리감이 들었다. 그가 너무 좋아서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너무 사랑하지만, 솔직히 불안했다.


순수하게, 진실되게 사랑하고 싶었다. 동시에 펭귄 씨가 분별력 있게 행동해 더 이상 신뢰를 깨지 않기를 바랐다. 평안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해결되지 않은 나의 아픔을 당연시하고 싶지도 않았고, 죽음을 바라보던 마음 또한 이제는 내려놓고 싶었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내 기질과 성정, 타고난 마음씨까지 모두 원망스러워질 지경이었다.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다. 이방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기억한다. 그렇다고 단순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좋았다. 내가 너무 싫었지만, 동시에 나를 너무 사랑했다. 그 싫음은 애증이라기보다, 이해에서 비롯된 안타까움에 가까웠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거의 떠올리지 않던 KN이 문득 생각났다. 노트를 펴 그의 이름을 적고, 그 옆에 펭귄 씨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서 내가 느꼈던 것들을 나열해 보았다. 외로움, 상처받기 싫은 마음, 연락을 자꾸 확인하게 되는 불안, 관계에 대한 불안정함. 다만 펭귄 씨와의 관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아무리 흔들려도, 사랑과 책임으로 맺어진 관계는 끝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말로 꺼내지 못했던, 이해되지 않던 일들도 차츰 떠올랐다. 이를테면 연락이었다. 일이 끝나고 집에 있어도 연락을 확인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걸까.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중에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읽음 표시가 사라져도 불안했고, 또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나는 언제까지 답을 줘야 할까, 이런 삶이 너무 지쳤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가 막막하게 다가왔다. 감정과 해야 할 일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 관심은 온전히 펭귄 씨에게 쏠려 있었다. 단순히 좋아서가 아니었다. 좋아서가 아니라, 안정감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늘 불안정했고, 불안했다. 연락 하나에도 자존심을 세우게 되었다.


글을 써 내려가며 깨달았다. KN에게서 느꼈던 감정과 지금의 내가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상처받기 싫어서 이렇게 느끼고 행동해 왔다는 것을. 내 상처의 뿌리와 근원이 그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펭귄 씨에게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 채, 연인으로서의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해결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나는 어느새 내 삶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도 점점 희미해졌다.


펭귄 씨는 연락이 왔을 때 내가 바로 답해야만 대화가 이어지는 사람이었다.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루 중 단 30분이라도, 오롯이 서로에게 마음을 두는 시간. 긴밀한 관계는 일적인 관계와는 다르다. 삶을 나누고, 마음을 토닥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함께 가정을 이루려는 사이라면, 그 필요성은 더욱 크다.


하루 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상처의 뿌리에 가까운 KN과, 그가 내게 남겼던 감정과 기억을 다시 마주하게 만드는 현재의 연인.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독사로부터 구하기 위해 놋뱀을 들었던 이야기처럼, 나 또한 회복의 과정을 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독사에 물려 죽어가던 사람들은, 칼이나 창으로 싸우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 그저 놋뱀을 바라보고 믿는 것으로 살아났다. 나 역시 누군가를 단죄하거나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보다, 내 안의 상처와 불안을 직시하고 바라보며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회복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깨달았다. 나 같은 사람은, 나처럼 상대를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은, 상대를 더 이해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를 더 들여다보게 해야 한다. 애초에 나는 상대를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인데, 그 위에 상대의 몫까지 얹어버리면 ‘나’는 사라진다. 그렇게 자존감은 낮아지고, 극단적인 충동은 커진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를 이해하자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졌다. 그제야 비로소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들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펭귄 씨는 해명하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먼저 연락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앞으로 더 신경 쓰겠다고, 그동안 부족했던 자신을 참아줘서 고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