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잎 — 기꺼이, 재개발
흉터딱지라는 갑옷 1에서 이어집니다.
여행 첫날밤 다짐했던 대로 부산에서의 마지막 날을 아쉬움 없이 보내고자 했다.
퇴실하고 나오는 길, MJ 언니에게서 전화가 와 굿바이 인사를 나누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해운대역으로 이동하는 중, 펭귄 씨가 사랑이 가득 담긴 연락을 보내왔다.그 덕분에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다. 해리단길을 걷다 보이는 건물들을구경하고, 시선을 끄는 카페를 검색하며, 혼자 여행의 묘미를 뒤늦게 깨달았다. 혼자 여행을 했지만, 네이버 지도에 하나하나 장소를 저장하며, ' 나중에 펭귄 씨랑 같이 와야지' 하고 생각한 즐겨찾기들이 수두룩하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소품샵에서 펭귄 씨와 동생 선물을 샀다. 보통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바로 사지 않는데 , 펭귄 씨를 닮은 것들 앞에서는 망설이지 않게 된다.. 펭귄 볼펜, 그와 나를 닮은 피규어들, 입가심하라고 줄 무설탕 레몬사탕까지.
흰여울마을 가는 버스가 곧 도착해 브런치를 건너뛰고 정류장까지 달려갔다. 마을 맞은편의 '마호우가'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식당까지 걸아가는 길도 자유롭고 색달랐다. 익숙한 공간을 벗어날수록 나는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큰 깨달음이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곳이라도 새로움이 없으면 잡생각에 빠지기 쉽다. 그렇기에 관찰할 수 있는 곳을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장소마다 차이는 있지만, 견뎌야만 하는 공간에서는 처음이라고 믿어야 하며 이유와 발견이 필요하니까.
에비톤 붓카케와 계란밥을 주문했다. 거의 날계란에 가까웠지만 따뜻했고, 부드럽게 어우러졌다. 이 역시 그에게도 맛보여주고픈 생각이 났다.
흰여울 문화마을은 정말 좋았다. 편안했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펭귄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그의 생각조차 나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 ‘go slow’라는 카페에 들어가 글을 쓰며 종종 창밖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윤슬처럼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셨고, 4년 전 이곳에 왔을 때와 달리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올해 그동안 썼던 일기들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내게 고착화되어 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 일기를 썼을 때와 지금의 간격은 크지 않지만, 그 사이 내가 나 자신에게서 발견한 것은 분명했다.
자존심.
그러나 상처에서 비롯된 자존심이었다.
왜 나는 펭귄 씨에게 자존심을 세우게 될까. 연인 사이에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끊어진 관계들 속에서 KN이 떠올랐다. 내가 정말로 아꼈고, 사랑했고, 본받고 싶었던 사람. 잘났다고 생각했던 친구일수록 상처는 더 깊었다. 나는 펭귄 씨를 경쟁 구도로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더 사랑하면 지는 게임, 내가 더 상처받게 될 거라는 생각. 마음이 커질수록 불안해졌던 것 같다. 섭섭함과 서운함 역시 결국 상처받은 내 자아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관계의 끝은 결혼이라고 머리로는 확신하면서도, 내재된 불안은 늘 관계의 종말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모든 걸 끝내고 싶어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도망이었다.
결국 나는 회피하고 싶었던 거다.
부산을 떠나기 싫었던 것도, 오빠에 대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싶어서였다. 그 마음이 너무 벅차서, 감당하기 힘들어서.
할머니와 통화하며 지금 느끼는 모든 상황과 생각을 일기로 남기라는 말을 들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그 말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삶에 충실하는 것, 그리고 그 삶에서 나오는 글을 쓰는 것이 나의 또 다른 사명이라는 것을.
노트에 2박 3일 동안의 깨달음을 적어 내려갔다. 내 안 깊은 곳, 오래 곪았던 상처에 딱지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너무 오래 방치한 탓에, 어느새 내 살의 일부라고 여겨왔던 것 같다. 마치 피부처럼. 아니, 어쩌면 그동안 나는 그 흉터딱지를 갑옷처럼 두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는 떼어내야 할 때인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가며 마주할 모든 일들이,
분명 새살을 돋게 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