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된 이해 위의 먹잇감

세 번째 잎 — 우리의 냉정

by 주나함

그릇된 이해는 우리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도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건 예기치 않게 들이닥쳤다. 우리의 관계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오해로 비쳤고, 미움으로 굴러가 원망처럼 거대해졌다. 조만간 직접 말씀드리려 했던 일이었지만, 우리의 관계는 예상보다 먼저 전해져버렸다. 누군가의 시선과 판단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왜곡되었고, 그 순간부터 우리는 헤어짐을 강요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끈끈했고, 서로를 향한 마음은 오히려 더 확고해졌다.

나는 우리의 관계를 이해받고 싶었다. 단순한 감정의 불씨로 시작된 사이가 아니라는 것, 나이가 어려 철없이 빠진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홀로 거의 일 년 가까이 신중히 생각하며 마음을 확인했었다. 그 시간은 결코 충동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썼다. 다른 이들을 이해시킬 수 있고, 같은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마음이란 또 무엇일까. 나는 수많은 단어 중 가장 사실에 가까운 단어를 골라내고, 복잡한 감정 속에서 단순하고 정제된 마음만 남도록 털어냈다. 그렇게 고르고 다듬은 말과 마음을 합쳐 건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변질될 수 있었다. 오랜만에 깨닫는 일이었다.

말과 마음이 서로를 보완하는 퍼즐처럼 맞춰지지 않았다. 어느새 본질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나의 언어가 문제였을까, 마음이 문제였을까. 아니, 둘 다 아니었다. 상대를 이해시키는 열쇠는 내게 달려있지 않았다. 아무리 명료하고, 적확하며, 순진무구한 단어를 골라내어, 청산유수처럼 흘려보내도, 상대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미 미움을 품은 마음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 일은 동시에, 내가 오랫동안 견고하게 붙잡아온 믿음을 흔드는 사건이 되었다. 내게는 일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생명력이 담긴 글은 그 무엇보다도 설득력이 강하며, 그 자체로 무기이자 방패가 되어줄 것이라 믿어왔다. 그래서 열심히 기록했다. 있었던 일과 마음을 객관적으로 면밀히 살피며, 문장으로 진솔하게 남겨왔다.

하지만 그날, 깨달았다. 아무리 진실된 기록이라도 객관적인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글을 말로 전하기보다, 직접 보여드렸다면 달랐을까. 눈으로 읽히게 해드렸다면 조금은 이해받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지금, 내 글의 영향력은 이해받기 위함에 있지 않았다. 이해시키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 내 글은 나 스스로에게 작동했다.


이해를 구하고 싶어 그동안 쓴 일기들을 들고 찾아뵈었다. 그러나 그 일 이후, 나는 되레 정신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모함을 받았다. 나를 염려하는 척, 아픈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우셨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어떻게든 우리를 갈라놓고 펭귄 씨를 붙잡으려는 시도임을 알고 있었다. 옳다고 지지할 순 없어도, 그분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그분은 나와 오래 알고 지낸 분이었고, 나는 그분을 진심으로 신뢰하며 존경해왔다. 그분 또한 늘 나를 아끼고 인정해주셨다. 작년 여름, 중요한 행사를 마치고 내가 대표로 소감문을 써 발표했을 때, 그분은 무척 기뻐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나눴던 모든 대화가, 어쩌면 그분께는 나를 허물고 정의내릴 수 있는 돌덩이로 변해 있었던 걸까. 그 돌덩이에는 모순이 가득했다.

그분은 관계를 정리할 시간을 줄 테니 나와 헤어지라고 고했고, 펭귄 씨는 더욱 곤란해졌다. 이를 알게 된 후, 손에 잡히는 일이 없었다. 생각이, 마음이, 허공에 매달려 갈피를 잃었다. 분산된 생각과 마음 때문에 시간을 쓸모 있게 보내기 어려웠다. 혼란스러웠다. 펭귄 씨에 대한 확신은 분명했지만, 이 모든 게 내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인격도 성숙하고, 지식 또한 풍부한데, 나는 무엇일까. 과연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또한 지금의 환경, 상황, 문제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내게 가장 원초적인 것, 신앙이 흔들리려 하니 힘들었다. 그분의 말에 나는 나 자신마저 의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펭귄 씨는 내 말에 나를 귀하게 여겨주었다. 그는 내게, 자신 또한 나에게 분명한 확신이 있다고 했다. 나의 조건이나 능력에 따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고, 내 존재가 좋다고 말했다.

우리는 세 가지 약속을 했다.

첫째, 서로를 버리지 않기, 포기하지 않기.

둘째, 결혼하기. 이혼은 없기.

셋째, 사역을 못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함께하기.




그분은 날마다 관계를 정리했냐며 펭귄 씨에게 물었다. 펭귄 씨는 뜻을 굽히지 않고, 한결같이 변치 않는 자신의 마음을 말씀드렸다. 하지만 그분 또한 입장은 단호했다. 감정을 내세우거나 다른 여자를 소개시켜주려 하는 등, 단호함을 고집하는 방식에는 존중이 부족해 보였다. 펭귄 씨는 입을 꾹 다물고 그저 묵묵히 자신이 감당할 일을 수행했다.

그때 우리는 그분께 시간을 두는 척 연기해야 했기에, 펭귄 씨가 일하는 동안 서로 연락할 수 없었다. 어쩌다 잠깐 연락할 수 있어도, 대화가 끝나면 그는 곧 대화창을 나갔다. 초반에는 침묵을 지키는 그의 태도가 이성적이고 인격적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점점 답답했다. 양가 부모님도 이미 허락하셨고 좋아하시는데, 결혼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왜 말하지 않는 걸까.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는 없는 걸까.

펭귄 씨는 내게 상황을 잘 말해주지 않았다. 내가 캐물어야 알 수 있었고, 우연히 모르는 내용이 나왔을 때만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늘 밝은 모습만 보여주던 그였기에, 그가 어느 정도로 힘든 건지 쉽게 알 수 없었다. 그로 인해 나는 그의 마음을 단면적으로만 보게 되었고, 입체적이지 않았다.




어느 날, 펭귄 씨가 내일 밤은 연락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그분과 관련한 일정이 늦게까지 있다고 알려주었다.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펭귄 씨도 나처럼 속상할까.

“오빠도 속상하지?”

내가 물었을 때, 그는 말했다.

“아침에 많이 하면 되지.”

이상하게 서운했다. 왜 이렇게 냉정할까. 나만 늘 서운한 것 같았다.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을 견디는 건 괜찮았다. 그러나 정확히 알 수 없는 마음과 갑작스레 당면한 상황을 또다시 소화하며 버티는 건 어려웠다. 점점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자격지심이 스며들었다. 옆에 있어도 된다는 합리성의 딜레마가 틈만 나면 얼굴을 내밀었다.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나는 과연 쓸모가 있는가.’


현실적으로 나는 직장도, 돈도 없었다. 지금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말을 듣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 말에도 유효기간이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를 싫어하는 척 장난치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는 더 애정을 보이며 내게 찰싹 붙었다. 나는 왜 싫어하는 척을 할까, 기시감이 느껴졌다.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펭귄 씨는 “솔직하게……” 하고 말을 꺼냈다. 내가 그런 장난을 치면 거절감이 들어 불안해진다고 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표현이 서툰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야 그의 마음을 확실히 알고 안심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옳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사과했다. 이제는 그의 마음을 들으며 알게 된 이유를 말했다. 그리고 나 또한 이전에 답답하게 느꼈던 상황을 솔직하게 전했다. 펭귄 씨는 미안하다고 했다. 아직 상황이 아직 잘 풀리지 않아 나 또한 답답하고 힘들 텐데, 괜히 짐을 더 얹고 싶지 않아 말을 아꼈다고.

우리는 오랜만에 길게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연락만으로는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꺼냈고, 서로의 마음을 다독였다. 어느 때처럼 우리는 서로를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



관계가 알려지고, 헤어짐을 요구받으며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다. 불과 한 달 반의 짧은 기간 동안, 글로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다. 거짓과 왜곡, 모순으로 요약될 만한 일들이었지만 나도 펭귄 씨도 그것들을, 그 사람들을 정죄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에 증명할 수는 없어도 우리 서로 사랑하며 우리에게 맡겨진 하루하루를 잘 감당하며 살아간다면, 증명은 따라올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들을 의식하며, 증명하기 위해 살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이 시간들을 우리 스스로에게 이렇게 의미내렸다. 훗날 우리가 어떤 이유로 크게 부딪히더라도, 이때의 시간을 떠올리며 금세 서로를 안아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 시간을 함께 버티고 견뎠던 날들을 기억하며, 끝내 사랑으로 일구어낸 관계임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펭귄 씨는 사역을 잠시 멈추게 됐다. 우리가 바라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상대의 강압적인 권유—실상 협박에 가까운 그것조차—하나의 입장이라면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의 최선은 아닐지언정, 남아 있는 이들이 연대를 지속할 수 있는 길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과녁이 되어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