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잎 — 우리의 냉정
(‘그릇된 이해 위의 먹잇감’과 이어집니다.)
우리는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에게는 당장 몸도 마음도 쉼이 필요했다.
동탄에서 철야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던 밤이었다. 차창을 스치는 바람 소리만이 낮게 흘렀다. 가로등 불빛이 차 안을 스쳤다. 잠시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가, 다시 어둠에 잠겼다.
그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앞으로 다른 교회를 가게 되었을 때, 말씀에 걸리는 부분이 있거나 교회의 연약한 모습에 실망하게 되면 어떡하겠느냐고. 그래도 두렵지 않겠느냐고. 그는 내가 혼란스러워 할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 두렵지 않다고, 오히려 기대된다고 했다.
그가 던진 질문들에 대해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이 정리된 후였고 답을 알고 있었다. 그를 만나기 전부터, 지금의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우리의 이성적인 판단과 현실 속에서 내린 선택처럼 보일지라도, 그 모든 걸음은 우리가 믿는 사랑이 세밀히 간섭하고, 이끄는 걸음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펭귄 씨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벅찬 듯 말했다.
“너무 기쁘다. 넌 참 강한 사람인 것 같아.”
그는 내게서 안정감을 느낀다고 했다. 외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보다 더 큰 사람에게 기댈 수 있다는 안정감이라고. 그분이 너를 어떻게 말했든 그분들은 너를 모르기에 하는 소리라며, 자신은 오히려 내가 참 든든하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고난이 겹쳐 오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불행은 파도처럼 밀려온다’고.
그러나 그 억겹의 시간을 지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모든 고난은 불행의 얼굴을 한 축복이었다는 것을.
고통 속에서 나는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삶을 이전보다 넓은 시야로 바라보게 되었다.
상황과 환경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그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고통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했다.
그것은 나를 결핍이 아닌 풍요로 이끌었다.
그리고 지금, 이제는 펭귄 씨와 함께 새롭게 갖는 시간을 지나며 그 문장을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
‘회복은 파도다.’
우리에게 밀려오는 모든 일들에는 회복의 손길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파도에 맞서거나 피하지 않고, 함께 움직이는 우리 또한,
누군가를 회복시키고 행복하게 만드는, 또 한 명의 회복의 행위자가 되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관계를 둘러싸고 여러 오해와 갈등이 깊어가던 그 시기에, 정작 양가 부모님은 우리의 관계를 진심으로 기뻐하며 응원해주셨다. 그 또한 끊임없이 밀려오는 회복의 파도 중 하나였다.
그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회복을 경험했다. 이전에는 받아보지 못했던 사랑과 관심, 그리고 깊은 소통을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경험했다.
그렇게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서 새로움은 계속 되었다. 당연한 것 없었기에 감사로 가득했다. 오히려 때로는 너무 벅차서 믿기 어려웠고, 실감조차 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를 이끄는 사랑에 대한 경이로움에 가까웠다.
아무리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일이 닥쳐온들
사람을 의식하며 거창한 증명을 할 필요는 없다.
절대자 앞에서의 정직할 것.
맡겨진 하루를 성실히 살아낼 것.
언젠가 크게 부딪히는 날이 오더라도
이 시간을 기억하며
금세 서로를 안아줄 수 있을 것이라 믿을 것.
우리는 파도 속에서 서로를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을 보드 삼아 파도를 탔다.
회복은 파도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지금도 그 파도를 건너고 있다.